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여성 30여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성 저자의 책이라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담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구약학 박사인 저자는 히브리어 원문과 다양한 번역본 성경을 다시 읽으며 구약의 스토리에서 조명 받지 못한 여성들을 재해석한다. 남성적 성경해석을 통해 익숙해진 여성들의 참 모습을 복원해 한국교회 앞에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구약 여성들 중엔 남성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의 시선으로 고정화되고 박제화된 경우가 여럿이다. 대표적 인물이 욥의 아내, 다윗의 왕비가 된 밧세바다. 욥의 아내는 ‘세계 3대 악처’라는 평을 흔히 듣는다. 그녀가 했던 딱 두 마디 때문이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 이 문제성 발언 탓에 욥의 아내는 자자손손 신앙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악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저자는 묻는다. 과연 그러한가. 그 다음 이야기의 맥락과 욥기 전체의 신학적 교훈에 비춰 욥의 아내를 살핀다. 분명한 맥락을 찾기 위해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최초 그리스어 역본인 ‘70인역’까지 참조한다. 그런 다음 차분하게 변호를 시작한다.
욥의 아내가 했던 두 마디는 저주성 발언이 아니라 남편으로 하여금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의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라는 충고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욥의 아내 역시 남편과 같은 쓰라린 고통을 감내하며 견딜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말 대신 침묵을 지키다 절규하듯 두 마디를 내뱉고 욥을 흔들었다는 것이다. 이후 친구들과의 논쟁에서 욥이 적극적으로 논쟁하는 장면은 이를 방증한다.
밧세바를 보는 시각에도 남성 해석자들의 횡포가 담겨 있다. 일부 주석가는 다윗을 유혹하려고 목욕하며 추파를 던진 여인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목욕하는 여성에게 남성의 성적인 도발을 자극하려고 유혹한 것처럼 죄를 덮어씌우려는 의도”라며 “가부장적 위계질서의 틀 안에서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라는 인식에 기초한다”며 그 심각성을 지적한다.
저자는 성경 본문이 다윗에게만 그 죄의 책임을 돌렸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다윗은 ‘권력형 성폭행범’임을 분명히 밝힌다. 나아가 밧세바 바로보기를 통해 우리 시대 목회자들의 성윤리의식도 짚어볼 것을 제안한다. “목사의 영적 지위와 권위를 이용한 성범죄가 의혹제기로만 끝나거나 피해 여성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도록 교회공동체의 책임의식이 절실하다.”(133쪽)
구약시대 네 번째 사사였던 드보라에 대한 재조명도 돋보인다. 드보라는 모세와 비견될 정도의 지도력을 갖춘 지도자이자 예언자였다. 드보라는 문자적으로 사사(judge) 즉 재판관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던 유일한 사사기의 지도자였다. 드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세워졌다(삿 5:7). 구약성경은 드보라의 위대한 지도력을 보여주고 있건만 한국교회에서 여성지도력에 대한 평가는 매우 낮다. 논의가 필요한 과제다.
저자는 구약 다시 읽기에서 발견한 여성에 대한 감상을 이렇게 적었다. “구약 본문에는 억압의 굴레를 탈피하고 자기 목소리를 낸 여성들의 의외성이 존재했고 위계적 질서를 정당화시키지 않는 목소리들이 숨통을 열어주곤 했다. 강자의 목소리가 진리가 되는 어제와 오늘의 타락한 질서에 해독제를 살포한 것 같은 고대 이스라엘 여성들의 이야기가 내 속에서 고동쳤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남성적 해석으로 박제화된 구약의 여성들을 불러내다
입력 2017-07-1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