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시흥캠 9개월 갈등’…명분·실리 다 잃은 ‘초라한 성적표’

입력 2017-07-12 05:00

시흥캠퍼스 추진을 둘러싼 서울대 본부와 학생들의 갈등이 9개월여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학생들이 처음 점거 농성에 들어간 지 274일 만으로 학교와 학생 모두 상처만 남겼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서울대 본부와 학생 측은 11일 ‘시흥캠퍼스협의회’를 발족하고 본관 점거를 해제하기로 합의했다. 양측이 서명한 ‘서울대 시흥캠퍼스협의회 구성을 위한 사전 합의문’에 따르면 협의회에서는 시흥캠퍼스 사업 추진 경과와 주요 내용을 검토하고 학교 행정에 학생이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주 1회 개최되는 협의회의 활동 기간은 1개월이며 그동안 시흥캠퍼스 건물 공사는 시작하지 않는다.

시흥캠퍼스에 기숙형 대학을 설치하거나 기존 교육단위를 이전하지 않는다는 본부 입장도 다시 확인했다. 협의회는 학생 4명, 본부 2명, 교수 대표 3∼4명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합의문에는 점거농성을 해제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총학생회는 “이번 주 내에 해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길었던 투쟁 시간에 비해 학생들이 얻어낸 합의 성과는 “아쉽다”는 평이 많다. 지난 1월 성낙인 총장이 제시한 ‘대타협안’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더 유리했다는 평가다. 성 총장은 당시 징계 예비조사 절차를 일시 중단하고 시흥캠퍼스 추진위원회와 서울대법 개정 태스크포스(TF) 등에 학생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학생 의결권이 법적으로 보장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번 합의문에는 이런 내용이 모두 빠졌다.

합의문에는 학생 징계 관련 내용도 없다. 현재 진행 중인 형사고발에 대해서만 성 총장이 “취하하겠다”고 구두 약속했다.

서울대는 지난해 8월 국제캠퍼스 조성을 위해 시흥시와 협약을 맺었다. 총학생회는 수익 목적의 사업이라며 반발했다. 학내·외에서도 시흥캠퍼스 반대 여론이 우세했다.

갈등이 장기화되자 점거농성은 동력을 잃었다. 여기에는 본부의 권위적 태도뿐 아니라 실리보다 명분을 중시하는 총학의 독단도 한몫했다는 평이다. 총학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를 외치면서 이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나 다른 대안은 내놓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12월에는 본부와 학생이 참여하는 6자회담을 보이콧하는 등 자발적으로 고립되기도 했다.

학생들 열기도 떨어졌다. 지난달 25일 전체학생대표자회의는 최소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예정보다 6시간 늦게 개최됐다. 지난해 점거에 참여했던 학생 김모(25)씨는 “총학이 현실적 대안을 함께 고려했다면 더 나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한때 폭력 사태까지 갔던 갈등이 대화로 해소된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이번 합의는 학생과 본부가 동등한 지위에서 대화를 통해 얻어낸 평화적 결과물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