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인사정국 갈등이 유례없는 ‘국회 공전’ 상황을 장기화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여소야대(與小野大)와 다당제라는 국회 지형 및 여야의 협치 정신 실종을 ‘비생산적 식물 국회’의 원인으로 꼽았다.
문재인정부는 통상 두 달간 운영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출범했다. 이 때문에 과거 정부 인수위 기간 동안 발생했던 초대 내각 구성을 둘러싼 인사 갈등을 현 청와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직접 겪게 된 셈이다. 그러나 역대 정부 인수위 기간에도 현재처럼 법안 처리가 ‘올 스톱’된 것은 아니었다.
이명박정부 인수위 기간 국회는 2007년 12월 28일과 2008년 1월 28일, 2월 19일과 22일 4차례 국회 본회의를 개최했다. 2007년 12월에는 ‘신행정수도 후속조치법’과 ‘기반시설부담금 폐지법’ 등 여야 의원이 발의한 법안 27건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듬해 1월과 2월에도 모두 117건의 법안이 가결됐다. 특히 2008년 2월에는 한승수 전 국무총리와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 이명박정부 초대 내각 조각 과정에 따른 여야의 대립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박근혜정부 인수위 기간에도 국회는 2013년 1월 1일 본회의를 열고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등 29건을 처리했다. 그러나 문재인정부 초반 국회는 출범 두 달째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국회는 지난 5∼6월 5차례 본회의를 열었지만 10일 현재까지 처리된 법률안은 정당이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도록 한 정치자금법 개정안 한 건뿐이다.
전문가들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출범한 문재인정부와 여당의 녹록지 않은 정치적 환경을 원인으로 꼽았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이명박정부나 박근혜정부 당시 여당은 다수당이었던 반면 현재 여당은 소수정당이므로 국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 힘든 상황”이라며 “국방 개혁과 법조 개혁 등을 진행하려면 협치가 생명이기 때문에 (청와대와 여당이) 협치 의지를 먼저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 양당이 현안 관련 협상을 주고받을 때와 달리 지금은 4∼5개 정당이 협상해야 하기 때문에 일처리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여당이 적극적으로 법안 처리를 추진하지 않아 입법 성과가 더디다는 지적도 있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여당은 인사청문회와 추가경정예산안을 우선 처리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어 다른 법안 협상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도 “지금은 문재인정부 초대 내각 구성과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가 가장 시급한 문제라 이외의 법률안 처리 문제는 아직 논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소야대 속 여당의 동력 부족 상황은 문재인정부의 조각 속도도 늦추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16일 만에 16개 부처 장관을 임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초대 내각 구성에 취임 이후 38일이 걸렸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62일째까지도 법무부·국방부·고용노동부 장관 등 주요 국무위원을 임명하지 못하고 있다. 또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 초대 내각 가운데 국회가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국무위원은 각각 1명과 3명이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한 문 대통령이 향후 몇 명의 장관 후보자를 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할지도 정치권의 시선이 쏠린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MB·朴정부선 인수위 기간에도 144·29건 법안처리…文정부선 ‘올스톱’
입력 2017-07-1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