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보면 한국은 IT, 반도체, 첨단 전자제품이 유명한 기술 국가인데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이 어떻게 이렇게 낮은가요?”
2015년 파리기후변화 총회에서 필자의 한국 에너지 현황 발표에 대한 참석자들의 반응이다. 우리나라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은 1차에너지의 1.5%로 OECD 최하위권이다.
에너지정책에 일대 전환을 시사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선언 이후 원자력계 반발이 거세다. 교수들이 집단 성명을 발표하고, 신고리 5·6호기 중단비용 12조6000억원 추정, 전기요금 폭등 우려 등 신뢰할 수 없는 숫자와 전망이 난무하고 있다. 재생가능에너지는 비싸고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득세한다. 그러나 현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은 탈핵이냐 아니냐도 중요하지만 급변하는 세계 에너지전환 정책과 산업을 고려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지난 40여년간 전력정책은 단순했다. 증가하는 전력수요에 맞춰 원전과 석탄발전소를 지어 송전망을 통해 가정, 상업, 산업에 공급하는 일방향 방식이다. 원전과 석탄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력량이 70%를 넘는다. 에너지산업도 발전소 건설과 송배전으로 단순했다. 공룡 같은 낡은 시스템이다.
세계 전력정책은 분산형으로 스마트해지고 있다. 생산지와 소비지가 실시간으로 전력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사용량을 관리한다. 가스복합발전, 열병합발전, 재생가능에너지로 에너지원도 다각화된다. 빅데이터를 이용해 최적 설비용량을 갖추고, 통신기술로 전력예비율을 관리한다. 전력산업은 재생가능에너지, 송배전망 스마트화, IT기술, 저장장치가 네트워크를 구축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요자원거래시장(DR시장)이 4000㎿를 돌파했다. 원전 4기 용량이다. 전력수요가 급등할 때 수요자원시장에서만 원전 4기 용량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세계 에너지시장은 원전 수출이 아니라 분산형발전시스템을 스마트전력망과 연결해 능동적으로 운영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도시바와 아레바의 몰락이 보여주듯이 원전은 사양산업이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2015년 세계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설비용량이 석탄발전 설비용량을 넘어섰다. 독일은 전력의 33%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다. 세계 1위 중국의 재생가능에너지 설비용량은 200GW로 우리나라의 50배 수준이다. 올해 미국은 재생가능에너지 발전량이 전력의 20%를 넘어 원전 발전량을 추월했다. 태양광 성장세는 특히 놀라운데 올해 1∼4월 생산량이 전년 동기 대비 37.9% 증가했다. 트럼프 시대에서도 말이다.
BMW, 구글, 애플 등 80개가 넘는 기업이 100%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을 약속했다. 지난해 BMW는 자사 전기차에 배터리를 수출하는 삼성SDI에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을 높여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삼성SDI는 태양광발전으로 배터리를 생산하는 비중을 높였다. 기업이 앞장서서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을 생산 또는 구매해서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핵 에너지전환 정책은 에너지원을 다변화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함으로써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원전하나줄이기 정책을 펼쳐 전력자립률을 2.9%에서 5.5%로 끌어올렸다. 지자체 차원에서도 수요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모범 사례다. 경기도 에너지자립, 충청남도 탈석탄, 부산시 클린에너지시티 등 지자체도 적극적이다. 지자체가 정부와 협력해 에너지분권을 추진하면서 분산형 에너지시스템을 구축할 절호의 기회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 에너지전환의 흐름에 발맞춰 갈 것인가 아니면 낡은 에너지시스템에 갇혀 몰락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로에 서있다. 원자력계의 반발이 격렬할수록 그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는지를 반증한다. 전환의 시기에 원자력계 이권에 발목 잡혀 전환을 멈출 수는 없다. 원전의 사고 위험, 석탄의 환경 부담, 초고압 송전탑이 초래하는 갈등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전환에 따른 기술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정치적 의지와 사회적 수용성이다. 이 절체절명의 에너지전환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유진 원전하나줄이기실행위원회 총괄간사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기고] 낡은 에너지시스템에 갇혀 몰락할 것인가
입력 2017-07-10 2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