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54·여)씨는 지난해 “딸에게 악귀가 씌었다”며 딸을 살해했다. 그는 최근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등법원은 “사물 변별,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범행했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며 치료감호를 명령했다. 김씨는 환각 피해망상 조울증 등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A양(17)은 지난 3월 인천의 한 공원에서 8세 초등학생을 살해하고 시체를 훼손했다. ‘인천 초등생 살인’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은 사건이다. A양 측 변호인은 지난달 첫 공판준비기일에 “범죄사실은 모두 인정한다”면서도 “아스퍼거증후군 등 정신병이 발현됐다”며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두 재판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형법 제10조는 사물 변별, 의사 결정 능력이 없는 사람의 행위는 벌하지 않고 그러한 능력이 미약한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는 형을 감경한다는 내용이다. 전자는 심신상실, 후자는 심신미약이라 일컬어진다. 주로 음주로 인한 만취 상태나 정신장애를 앓는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이 조항이 적용된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9일 “형법 제10조는 책임주의에 입각한 조항”이라며 “책임주의는 책임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책임을 묻겠다는 것으로 근대 형법의 보편적인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심신장애를 이유로 형이 감면되면 “납득할 수 없다”는 여론이 들끓는다. 특히 살인 성폭행 등 강력범죄의 경우 비난은 거세진다. 2008년 8세 아동을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법원이 징역 12년형을 선고하자 “피해자가 20∼21살이 되면 풀려나는 것”이라며 비판이 쏟아졌다.
단순히 법 감정만의 문제는 아니다. 범죄 예방 측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법정형을 내리지 않고 심신미약이란 이유로 감형해주면 누가 경각심을 가지고 살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강력범죄의 경우 주취·정신장애 상태의 범죄자 비율이 높다. 대검찰청에서 지난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살인 범죄자 중 42.0%가 범행 당시 주취 상태였으며 7.9%는 정신장애를 앓고 있었다. 20세 미만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중 28.7%도 주취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이는 검찰 조사 단계에서 파악된 것으로 재판에서의 심신장애 인정 여부와는 별개다. 하지만 그만큼 심신장애 상태에서 이뤄진 범죄 비율이 높다는 측면에서 비판이 제기된다.
이러한 지적을 받아들여 일부 법 개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특히 조두순 사건의 영향으로 2010년 성범죄에 한해 예외조항이 만들어졌다.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범죄를 저질러도 감면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아예 형법 제10조를 임의규정으로 바꾸는 개정안도 국회에서 발의돼 소관 상임위에 접수된 상태다. 현재 제10조는 강행규정으로 심신장애가 인정되면 무조건 감면하도록 하고 있다. 위험을 예견하고도 일부러 심신장애를 일으킨 경우만 제외된다.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주취상태와 약물 등으로 인한 범죄자의 형을 감형하는 것은 국민정서에 반한다”며 지난 1월 해당 개정안을 발의했다. 황태정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법리적 측면에서는 비판 소지가 있는 개정안”이라며 “똑같이 책임 능력이 없는데 누구는 봐주고 누구는 처벌한다는 건 책임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형법의 여러 목적을 절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 교수는 “근대 형법의 주요 목적은 일반 예방, 특수 예방, 응보 등 3가지”라고 설명했다. 일반 예방은 형벌을 집행함으로써 이를 지켜보는 일반 국민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특별 예방은 범인이 재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일컫는다. 최석윤 전 한국비교형사법학회장은 “형법 제10조는 일반 예방과 특수 예방의 측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며 “그런 비판을 받아들이고 이 3가지 목적을 절충하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심신장애 감면’ 논란… “법리 따른 것” vs “범죄 악영향”
입력 2017-07-10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