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서도 공사 구분 못한 ‘트럼프 패밀리’

입력 2017-07-09 18:48 수정 2017-07-09 22:24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동행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가 8일(현지시간) ‘여성기업가 기금’ 행사에 패널로 참석해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보며 발언하고 있다. AP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가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47)와 딸 이방카(36)가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지나친 ‘광폭 행보’로 비난을 받고 있다. 이방카는 G20 공식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자리에 대신 앉았다가 비난에 휩싸였고, 멜라니아도 트럼프 대통령의 양자 정상회담을 서둘러 끝내려 해 구설에 올랐다. G20 회의가 트럼프 대통령의 가족행사로 변질됐다는 비아냥마저 나오고 있다.

AP통신과 영국 BBC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8일(현지시간) G20 회의 공식 행사에서 이방카가 트럼프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옆자리에 있는 사진을 러시아 관리가 트위터에 올려 논란을 촉발했다. 사진 속 이방카는 시 주석,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두번째 사진). 이에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의 권위까지 넘보려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댄 파이퍼는 트위터에 “미국의 중요한 점은 정부의 권위가 혈통이 아니라 국민에 의해 부여된 것”이라며 이방카는 대통령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 반트럼프 성향의 브라이언 클라스 런던정경대 연구원은 “선출되지도 않고, 자격도 없는 대통령의 딸이 G20 회의에서 시 주석 등과 함께 앉아 미국을 대표했다”고 조롱했다.

백악관은 이에 대해 “이방카는 회의실 뒤쪽에 앉아 있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양자회담 참석차 자리를 비우자 대신 앉았다”고 설명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정상은 자리를 비울 때 대리 출석할 사람을 결정할 수 있다. 이방카의 착석은 문제없다”고 진화했다. 이 회의는 개발도상국 여성 기업가 지원을 위한 새로운 펀드 출범 행사로 이방카도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초에는 조용하던 멜라니아의 행보도 두드러졌다. 멜라니아는 6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할 때 그를 소개하는 역할을 했고, 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는 트럼프 옆자리에 앉았다. 7일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양자회담이 길어지자 메신저로 회담장에 가 회담 마무리를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미국 관리들이 멜라니아에게 “마라톤회담을 빨리 끝내게 해 달라”며 회담장으로 들여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영부인이 들어갔다 나온 뒤에도 회담은 한 시간이나 더 길어져, 그 임무는 실패했다”고 털어놨다. 양자 회담은 당초 30여분으로 예정돼 있었으나 2시간16분가량 진행됐다. 틸러슨 장관은 회담에 대해 “긍정적 케미스트리(positive chemistry)가 있었다”고 총평했으나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선 미·러가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방카의 남편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인 재러드 쿠슈너(37)도 G20 회의 중 정상회담에 자주 배석해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을 과시했다. 결국 대통령의 부인과 딸, 사위가 G20 회의 주역으로 활약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각료보다는 혈통을 더 믿고 중시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노석철 기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