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택가스복합화력발전소에 들어갈 설비를 만들고 있는 중소기업 A사 직원들의 표정은 요즘 어둡다. A사는 총 발주금액 35억원의 10%를 계약금으로 받는 조건으로 GE파워와 납품 계약을 맺었으나 초기 자금난을 겪고 있다. 공기업이 선금으로 지급하는 20∼30%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계약금을 받은 탓에 최종 납품까지 필요한 비용을 자체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기업은 총 발주금액의 일정 비율을 선금으로 주도록 한 기획재정부 지침을 따르지만 민간기업은 상호 합의로 계약금 규모를 정하기 때문에 발주사 요구에 따라 이처럼 격차가 벌어진다. A사 관계자는 9일 “계약금이 0원이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맺는 일이 흔하다”며 “발주사에 문제를 제기하면 ‘앞으로 계속 공사 안 할 거냐’는 식으로 말해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민간기업과 계약을 맺는 중소기업은 공기업과 계약을 맺을 때보다 3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는 계약금을 받고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계약 당사자들이 자유롭게 맺은 사적계약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중소기업을 보호할 계약금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게 중소기업계의 중론이다.
신평택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사업은 공기업 서부발전과 대기업 계열사 GS에너지, 금융 주간사 KB금융으로 꾸린 특수목적법인(SPC) 신평택발전주식회사가 원발주사다. 이 법인은 총 발주금액의 5%를 계약금으로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포스코건설과 EPC(대형 건설 프로젝트나 인프라사업 설계부터 공사까지 해주는 사업)를 계약했다. 이후 포스코건설→대우건설→GE파워→A사까지 하청이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원발주사가 계약금을 낮게 책정하면 하청업체도 비슷한 수준으로 계약금을 책정한다. 당장 돈이 없는 중소기업은 자금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 방침에 따라 ‘상생’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공기업과 달리 대기업은 비용절감을 우선시한다. 서부발전 관계자는 “우리는 계약금 규모가 충분치 않다는 입장이지만 민간사인 GS에너지는 당장 계약금을 조금만 주는 게 좋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GS에너지는 “공기업이 지분을 갖고 있더라도 신평택발전주식회사는 민간기업이기 때문에 기재부 지침에 영향받지 않는다”며 “계약금 5%는 회사 재무사항과 하자보증 수준을 고려한 수치이고 포스코건설과 상호 합의한 계약이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대기업이 아무리 적은 계약금을 제시해도 중소기업은 생존을 위해 마지못해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중간 기업에서 계약금 규모를 줄여 차액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며 “다만 규모도 작고 원수급자와 안정적인 거래관계도 없는 중소기업들은 계약이 끊길까 두려워 문제제기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계약금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고성하이화력발전소에 보일러 등 설비를 납품하는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10월 ‘납품대금은 계약금 없이 납품 후 100% 지급한다’는 계약조건을 내걸어 중소기업 사이에서 “배짱 계약을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우리도 발주사로부터 계약금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며 “프로젝트마다 계약조건이 달라 계약금 없이 납품을 진행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대기업 ‘계약금 갑질’에 중소기업이 운다
입력 2017-07-10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