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사로] 장애(長愛), 긴 사랑과 감사

입력 2017-07-08 00:02

늘 “감사합니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아서 ‘감사 할아버지’란 별명을 갖게 된 할아버지가 있었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고기 한 근을 사서 집으로 가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그때 지나가던 개 한 마리가 바닥에 떨어진 고기를 물고 달아나버렸다. 사라져가는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아버지는 나지막이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한 젊은이가 지나가다 그 말을 듣고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값비싼 고기를 잃어버렸는데 뭐가 그렇게 감사해요?”

할아버지가 말했다. “젊은이. 내가 고기는 잃어버렸지만 내 입맛은 잃지 않았다네. 고기가 아무리 많아도 입맛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지 않겠나. 우리 인생길에 폭풍구름이 몰려와도 구름 뒤에 나타날 무지개를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는 것이라네.”

고난 가운데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항상 감사하며 살 수 있음을 알려주는 예화다. 최근 국민일보를 통해 소개된 한 장애인 아동의 어머니 A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사례가 기사화된 이후 여러 방송사로부터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니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감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후원 모금을 위한 방송촬영 경험담을 소개했다.

“한 방송사에서 저희 집을 방문해 아이의 상태와 장애정도, 주거환경 등을 카메라에 담고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지금 가장 힘든 게 뭔지 묻더군요. 전 대답했죠. 지금은 힘들기보단 감사한 게 더 많다고요. 그런데 계속해서 ‘최근에 겪은 어려움’ ‘아이가 어떤 모습을 보일 때 힘든지’ 등을 묻더군요. 제가 머뭇거리자 ‘힘든 얘길 잘 전해야 모금이 잘 되는데’라면서 난감한 표정을 짓더라고요.”

A씨는 “왜 장애인과 그 가족들은 꼭 힘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형편이 어려워 아이가 더 많은 치료를 받지 못하는 점은 안타깝지만 주변에서 아이에게 보내주는 사랑과 관심을 보며 하루하루 힘을 얻는다”고 했다. 또 “예전엔 무디기만 했던 신앙도 아이의 장애를 보듬는 과정을 통해 단단해지고 삶을 향한 감사도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어머니 B씨는 “하루에도 수십 차례 경련을 일으키고 신체지지의자에 앉아있기도 힘들어하는 아들을 보살피다 두 차례나 자살을 결심했었다”고 고백했다. 온종일 숨이 넘어갈 듯 힘들어 하는 아이를 보며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기도할 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자괴감이 들 때 장애인의 가족들은 절망에 빠지기 십상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외로움과 슬픔은 이들을 희망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한다.

장애인 가족들이 삶의 반전을 마주한 것은 스스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다’는 고백을 하면서부터다. B씨는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은 아이가 호전되는 경과가 더딜 때 위축되고 낙심하기 쉬운데, 느리게 진행되는 치료과정 자체를 하나님이 예비하신 계획이라고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감사의 제목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혹자는 장애를 세상에서 가장 긴 사랑, 즉 ‘장애(長愛)’로 설명하기도 한다. 오랜 시간 애정과 관심이 지속돼야만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란 의미인 동시에 짧은 시간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깨달음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A씨와 B씨는 분명 ‘긴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선택한 사랑엔 끊이지 않는 감사가 있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