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53)씨에 대해 1심 법원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2015년 5월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지 784일 만이다. 이번 민사소송 결과가 확정되면 강씨 등은 6억원대 손해배상금을 받게 된다.
하지만 당시 강씨를 수사했던 검사들의 배상 책임은 소멸시효 만료 등의 이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부장판사 김춘호)는 6일 강씨와 그의 가족들이 국가 등을 상대로 낸 31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강씨 등이 받게 될 배상금으로는 6억8600여만원을 책정했다.
강씨의 유서대필 사건은 1991년 발생했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는 그해 5월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몸에 불을 붙이고 투신했다. 옥상에서 김씨가 남긴 유서 2장이 발견됐는데, 검찰은 당시 전민련 총무부장이었던 강씨가 유서를 대필하고 분신을 사주했다며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했다. 강씨는 징역 3년 확정 판결을 받고 복역하다 94년 만기 출소했다. 강씨는 재심을 통해 24년 만에 ‘동료에게 자살을 종용하고 죽음을 운동에 이용했다’는 낙인을 벗을 수 있었다.
법원은 당시 유서를 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 감정인과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강씨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됐던 국과수의 필적 감정은 기본 원칙을 위반한 잘못된 감정이었다”며 “국가와 문서 감정인은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할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당시 강씨를 수사·기소했던 검사들의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수사 과정에서 강씨가 유서를 대필했다고 인정할 만한 국과수 감정결과 등의 증거가 있었다”며 “검사의 잘못된 수사 책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검사가 의도적으로 잘못된 감정을 하도록 했다는 사정이 있어야 하지만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일부 검사의 폭행·폭언 등 불법행위는 “배상 책임은 인정되지만 소멸시효가 만료돼 배상 청구권이 사라졌다”고 했다.
강씨 측은 선고 직후 유감을 표시했다. 강씨 등의 소송 대리인인 송상교 변호사는 취재진과 만나 “판결 결과는 큰 틀에서 유감이다”며 “사건 조작을 지휘·진행한 핵심 당사자들(검사)의 책임이 인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국과수 감정인에 대한 책임만 인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돼 매우 유감스럽다”고 덧붙였다. 강씨 변호인단은 논의를 거쳐 항소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이가현 양민철 기자 hyun@kmib.co.kr
26년 만에… ‘유서대필 사건’ 국가책임 인정
입력 2017-07-06 2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