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열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연차총회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새로운 업무 스타일이 뒤늦게 회자되고 있다. 영문 개회사를 일일이 첨삭하는가 하면 전임 부총리와 같은 수준의 의전을 과하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김 부총리의 깐깐한 지적은 연차총회에서 낭독할 개회사 준비에서부터 시작됐다. 개회사 작성을 담당한 국제금융협력국 직원들은 국문과 영문으로 작성한 개회사 초안을 각각 보고했다. 국제 행사임을 감안해 영문 개회사를 선택했다. 하지만 영문으로 된 개회사 초안이 탐탁지 않았던 김 부총리는 문구 하나하나를 손봤다고 한다. 담당 국과장과 직원, 에디터 직원까지 모아놓고 어색한 표현과 문법 등을 다듬었다. 일부 표현에 대해 “미국 초등학생들이나 쓸 법한 표현”이라고 지적하는가 하면, 더 고급스러운 표현으로 대체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날 밤 10시부터 시작된 김 부총리의 ‘빨간 펜’ 첨삭은 자정을 넘겨 새벽 1시30분에야 끝났다. 지적사항을 잔뜩 받아든 직원들은 밤을 새워 개회사를 다시 수정했다고 한다. 기재부의 한 직원은 “업무에 있어서 ‘완벽’을 지향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김 부총리의 눈높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혀를 내둘렀다.
기재부 또 다른 관계자는 “김 부총리가 풀브라이트 재단 장학생으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땄고, 예산실 출신으로는 드물게 미국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파견근무도 했기 때문에 영어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있으실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행사 기간 동안 자신에게 쏠리는 직원들의 의전 역시 부담스러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회 직후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의전이 매끄럽지 않아도 무방하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당부한 것도 AIIB 총회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
[관가 뒷談] ‘빨간펜’ 선생님 된 김동연
입력 2017-07-07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