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25년 동안 처음의 마음을 한시도 잃지 않았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 옌볜(延邊)과학기술대학을 살리는 일! 중국 옌지(延吉)에 위치한 이 대학은 보통의 대학이 아니다. 모든 교직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르는 크리스천이고, 크리스천에 의해 설립됐다. 학문을 가르치면서도 예수님의 사랑이 먼저인 곳이다.
김종관(60) ㈔국제교육문화재단 사무국장이 하는 일은 이 대학을 후원하고자 하는 수많은 한국교회·성도들의 후원금을 모으고 관리하며 전달하는 것이다. “단 한 번도 후원금을 사람의 돈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김 사무국장은 “복음이 미진한 중국, 조선족이 주로 거주하는 지린(吉林)성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선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이 사역에 뛰어든 것은 1992년. 4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현욱(78) 국제외교안보포럼 이사장의 보좌관을 지낸 게 계기였다. 김 전 의원 등과 함께 옌볜과기대 설립을 지원한 것이다.
옌볜과기대는 한국교계의 바람대로 쑥쑥 성장했다. 중국의 100대 대학으로 선정됐다. 김진경 총장과 교수들의 헌신이 이룬 결실이었다. “세계 유수대학에서 좋은 대우를 받다가 복음을 위해 자리를 옮긴 이들인데 우리 돈 100만∼200만원 박봉을 받아도 싫은 기색 없이 헌신하니 발전할 수밖에요.”
고려대 행정학과 68학번인 그는 열일곱 살 위 큰형의 갑작스런 부고로 염전사업을 물려받고 가장이 됐다. 77년엔 강환복 목사(서산 동부교회)의 손에 이끌려 주님을 영접했다. 90년 서울로 올라온 뒤 협성대신학대학원 신학과를 다녔고, 93년 졸업 후 영등포제일감리교회 장로가 됐다.
이후의 삶은 항상 복음이 최우선이었다. 90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회복한 뒤 더 절실해졌다고 한다. “두발로 서서 걸을 수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더라고요. 죽다 살아나선 항상 제 안에 예수님이 계신가 묻게 되더라고요.”
그는 자신의 운전기사를 ‘장로님’이라 부른다. 37년 동안 동고동락한 운전기사는 원래 크리스천이 아니었다가 김 사무국장의 신심에 감화돼 교인이 됐다. 그도 모르게 교회에 출석하더니 어느덧 교회의 장로가 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요즘 걱정이 하나 생겼다. 옌볜과기대 주최 한글 글짓기 백일장을 후원하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어서다. 조선족과 한족 학생을 대상으로 해마다 각각 5월과 10월에 열리는 백일장의 수상자들은 1주일간의 한국체험학습과 옌볜과기대 입학 특전도 얻는다. 그런데 후원금이 점차 줄어 지난 5월 행사를 간신히 치렀고, 내년 후원자는 아직 찾지 못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채워 주시리라 믿습니다.”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만난 김 사무국장은 “그저 주님의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 저 말고도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크리스천은 얼마든지 많으니까요”라고 했다.
글=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
[미션&피플] 김종관 국제교육문화재단 사무국장
입력 2017-07-07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