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준엽] 정부는 심판 역할만 하라

입력 2017-07-06 17:56 수정 2017-07-06 17:58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배달앱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업계는 크게 술렁였다. 수년간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가며 사업을 키웠는데, 정부가 갑자기 직접 뛰어들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자 미래부는 “수수료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영세사업자 지원과 불공정거래 개선 등에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취지”라며 “국가가 직접 앱을 개발하고 운영하겠다는 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미래부의 해명에도 개운치 않은 느낌이다. 4차 산업혁명 주무 부처이자 미래와 현재가 가장 치열하게 부딪히는 분야를 아우르는 부처를 이끌어갈 인물의 발언으로는 실망스러웠다. 민간 영역에 문제가 있으니 정부가 심판 역할을 포기하고 직접 선수로 뛰어들겠다고 하는 발상은 위험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논리라면 구글과 애플이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시장을 양분해 ‘갑질’을 하니 국가가 직접 스마트폰 OS를 개발해 국내 시장을 보호하자고 하거나, 페이스북이 SNS를 독점하고 있으니 정부 주도로 ‘한국형 페이스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다. 가능성을 떠나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민간이 할 일과 정부가 할 역할이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배달앱 시장은 전단지를 돌리고, 전화로 주문을 받던 기존 배달 시장을 디지털로 전환해 창출한 경우다. 요즘 아파트 단지엔 음식점 전단이 거의 없다. 대신 배달앱을 통해 홍보한다. 이런 시장을 만들기 위해 업체들은 수천억원을 투자받아 사업을 키웠다.

물론 그 과정에서 문제도 발생했다. 이용자 후기 중 나쁜 내용은 감춰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고, 수수료 문제로 영세사업자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이런 문제는 공정한 룰을 정해 지키도록 하면 된다. 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정부가 직접 뛰어들겠다는 건 시장 자체를 붕괴시키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규제가 산업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다. 배달앱 시장이 나타날 걸 미리 알았다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도 예상해 미리 규제를 마련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서비스가 언제 출현할지도 모르는 게 요즘이다. 스마트폰과 통신망의 발달로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많은 온·오프라인 연계서비스(O2O), 사물인터넷(IoT) 서비스가 앞으로 출현할 건 명확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정부의 역할은 새로운 산업의 등장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문제점에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 제도가 새로운 산업에 걸림돌이 된다면 과감하게 규제를 없앨 필요도 있다. 반대로 제도상 허점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부분은 고쳐야 한다. 구글, 페이스북 등 해외 IT 기업의 세금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한국 법률을 준수하고 정해진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세법상 고정사업장이 있어야 과세를 할 수 있는데 구글 등은 국내에 서버를 두고 있지 않아 고정사업장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국내에서 앱 수수료, 광고 등으로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업계에선 파악하고 있다. 매출을 공시할 의무가 없는 유한회사라 이마저도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반면 지난해 매출 4조원을 돌파한 네이버는 2579억원의 법인세를 납부했다.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기업 활동을 하며 가져가는 수익만큼 정당하게 세금을 내고 있는지 잘 살펴봐야 하는 문제다. 법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있다면 개정을 논의할 필요도 있다. 또 국내 기업과의 형평성이 어긋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을 하게 된다는 지적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최근 잇달아 구글을 비롯한 미국 IT기업에 과징금과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정부가 선수 역할에 뛰어들 때가 아니다. 공정한 심판으로서의 역할을 잘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