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가 무고죄로 역고소를 당한 여성들이 줄줄이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무고죄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무고죄(誣告罪)는 상대에게 죄가 없는 줄 알면서도 벌을 받게 하려고 일부러 신고하는 죄로 10년 이하의 징역이 가능할 정도로 처벌이 무겁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1부(부장판사 나상용)는 가수 겸 배우 박유천(31)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허위 고소한 혐의(무고)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송모(24·여)씨에게 5일 무죄를 선고했다. 국민참여재판(국참)에 참석한 시민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무죄평결을 내렸다. 송씨는 최후진술에서 “저는 성폭행 피해자다. 너무 억울하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앞서 송씨는 박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했지만, 박씨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박씨는 곧바로 송씨를 무고죄로 고소했다. 성폭행이 무혐의니 당연히 고소한 사람은 무고죄 아니냐는 게 상식적인 생각이다. 실제로 송씨에 앞서 이모(25·여)씨가 역시 박씨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고소했다가 무고죄로 역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 송씨의 무고혐의를 재판한 법원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송씨가 허위사실을 신고하고 (박씨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했다. 형사법적으로는 박씨가 송씨를 성폭행하지 않았다 해도 송씨는 당시 강제로 성관계를 당했다고 여겼을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다.
지난달 배우 이진욱(36)씨와 관련된 사건도 그런 경우다. A씨(33·여)가 성폭행 당했다며 이씨를 고소했지만 수사기관은 혐의 없다고 판단했다. 이씨는 A씨를 무고죄로 맞고소했으나 이 역시 지난달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의사에 반해 성관계가 이뤄졌다고 여겼을 개연성이 충분하다”며 무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한 사건을 두고 ‘성폭행은 무혐의, 무고죄는 무죄’라는 결론은 언뜻 모순돼 보이지만, 법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성폭행 사건과 무고 혐의를 따지는 재판은 별개다. 법조계 관계자는 “성폭행과 무고는 하나의 시소처럼 한쪽에 무게가 실리면 다른 쪽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유명인에게 성폭행 무고죄로 고소만 당해도 대가를 노린 꽃뱀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진다는 점이다. 지난달 최호식 호식이두마리치킨 전 회장 성추행 사건 당시에도 고소한 여직원이 “대가를 노린 것 아니냐”는 성급한 추측이 쏟아졌다.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하자 이런 의심은 확신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호텔 로비에 있던 행인이 여직원을 도와 택시를 타도록 도와줬다가 꽃뱀 일당으로 몰리기까지 했다.
여성단체는 성폭력 사건에서는 무고죄 여부를 더욱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고죄가 너무 넓게 인정되면 성폭력 피해자의 신고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평원 김보람 변호사는 “성범죄는 특히 피해자가 밖으로 알릴 용기를 내기 어려운 범죄”라며 “명백한 무고 사안이 아닌데도 법원이 성폭력 관련 무고죄를 너무 폭넓게 보게 되면 오히려 2차 피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성폭력 범죄의 경우 혐의없음 처분 비율이 높은 특성도 감안해야 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성범죄 사건에 대한 혐의없음 처분 비율은 36.11%로 전체 사건의 혐의없음 처분 비율(25.47%)에 비해 높았다.
지난해 12월 이 같은 문제를 반영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사건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종료되거나 법원의 재판이 확정되기 전까지 수사할 수 없도록 한 성폭력특례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는 성폭력범죄와 무고 사건 수사를 분리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개정안 검토보고서도 “두 사건의 증거서류, 증인 등이 동일하므로 분리가 곤란하며 분리가 가능하더라도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성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감수성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며 “법안으로 강제조치를 두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임주언 이가현 기자 eon@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성폭행도 무죄, 무고죄도 무죄… 아리송한 ‘황희 판결’
입력 2017-07-06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