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윌슨공항에서 이륙한 국내선 항공기의 목적지는 케냐 북동부 와지르주였습니다. 흙먼지가 가득했던 와지르공항의 모습만으로도 심각한 가뭄이 느껴졌습니다.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국제NGO들의 차량들도 긴장감을 더했죠. 케냐 월드비전과 함께 와지르의 내륙으로 들어가자 가뭄의 민낯이 처절하게 드러났습니다. 말라버린 우물이나 연못이 부지기수였죠. 목축이 지역 경제의 중심이지만 가축들은 가뭄과 기근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은 하나둘 고향을 떠나버렸습니다.
20일 오전에는 우톨레초등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이 마을도 기근으로 고통 받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학생들이 많이 남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이 마을에선 공동우물이 마르지 않았기에 공동체가 유지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가뭄과 기근이 2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만큼은 냉수처럼 시원했습니다. 건물 담벼락이 만든 그늘에 기댄 아이들은 영어 알파벳 공부를 하고 있었고 고학년 남학생들은 흙먼지를 뚫고 축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과 웃고 떠들면서도 순간순간 슬픔이 묻어나는 한 아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담임교사에게 물어보니 일리아스 모게(8)군이라고 했습니다. 한 달 전쯤 가족들이 가축에게 먹일 물과 풀을 찾아 먼 길을 떠나 혼자 남아있다고 합니다. 환한 웃음의 모게군은 수업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기특한 학생입니다. 이런 모게에게 목축을 위해 기약 없는 여정을 떠나자는 부모의 제안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고 합니다. 고민 끝에 그는 혼자 남는 길을 택했고 가족과 눈물의 이별을 했습니다. 가족과 생이별한 아이의 일상이 행복할 수만은 없겠죠. 주중엔 가족들과 웃고 떠들던 집에서 혼자 지냅니다. 저녁식사는 학교에서 받은 점심 급식을 아꼈다 먹는다고 합니다. 그나마 주말엔 담임교사가 모게를 집으로 초대해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습니다.
한반도도 극심한 가뭄을 겪곤 합니다. 하지만 물이 없어 목숨을 잃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 땅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극한의 삶이 와지르에선 일상입니다. 긴 가뭄의 가장 큰 피해자는 매일 물을 찾아 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 아이들입니다.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이죠. 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자 희망입니다.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아이들이 제대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서둘러 교실을 향해 뛰어가던 모게의 환한 웃음과 쓸쓸해 보였던 뒷모습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던 그 아이가 자신의 꿈을 꼭 이룰 수 있길 소망해 봅니다.
와지르(케냐)=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미션 톡!] 가뭄이 앗아간 행복… 텅빈 집서 홀로 지내요
입력 2017-07-06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