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입장 차이는 안타깝게도 재협상 절차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 측면이 많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미 자신이 4월 18일 언론을 상대로 FTA 재협상을 선언했기에 “재협상 절차가 이미 진행 중”이라고 인식하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이 합의해주지 않는 한 재협상 절차는 개시되지 않는다는 인식 하에 “FTA 효과에 대한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정부는 정상회담 직후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FTA 재협상에 합의해주지 않았음을 성과로 내세우고 있는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진행 중인 재협상을 잘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미국이 ‘재협상(renegotiation)’이라 부르는 것이 협정의 ‘개정(amendment)’임은 명백하다. 실제로 백악관 대변인이 한·미 FTA 제22조 2항의 협정 개정 절차인 특별공동위원회 개회를 요청할 계획임을 곧이어 밝혔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미 FTA 개정 절차가 과연 미국 측의 일방적 요청으로 개시될 수 있는지부터 확실히 이해해야 올바른 대응 전략이 도출된다.
한·미 FTA는 ‘일방 당사국의 요청’으로 특별공동위가 ‘의무적으로 개최’되도록 규정하고 있고, 공동위 자체에서 개정을 고려하고 심지어 양허 사항까지 수정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제22조 2항). 우리 정부가 주장하는, 공동위에서 양국이 합의 하에 결정을 내려야 개정 협상 단계로 넘어간다는 해석은 이러한 명문규정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해석이다.
정부가 내세우듯 과거 칠레 측의 한·칠레 FTA 개정 요구를 우리가 오랫동안 거부해온 사례를 들어 한·미 FTA의 개정도 우리 측이 거부할 수 있다는 설명은 비논리적이다. 한·칠레 FTA는 ‘개정’이라는 권한이 공동위의 권한으로 명시되어 있지도 않고, 모든 절차가 양측 합의 하에 개시되는 구조로 규정하고 있어(제18조 1항), 한·미 FTA 개정 조항과는 상이하기 때문이다.
국제사법재판소는 판례를 통해 한 국가의 협상 요구가 있으면 ‘신의성실원칙’에 입각해 최소한 협상 개시에 응해야 하는 것이 국제법의 일반 원칙임을 확인하고 있다. FTA와 같은 경제 협정은 개정의 필요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어 개정 절차를 마련하고 있고, 심지어 일방에 의한 파기도 가능토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한·미 FTA처럼 일방 당사국에 의한 개정 절차 개시 근거조항까지 명시해놓고 있는 협정을 두고 반드시 양 당사국이 합의해야 개정 협상 절차로 진행할 수 있다는 식의 해석론을 펼치는 것은 국제적으로 수용될 수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비상식적인 해석이 최고 정책 결정자의 인식 속에 자리 잡아 중차대한 한·미 정상회담 장소에서 엉뚱한 전략으로 표현되고 말았다는 데 있다. 도대체 통상대국을 자처하는 국가의 정부 통상 전문가들의 사전 검토를 어떻게 한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설령 정부의 해석이 맞는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협정 개정에 합의해주지 않아도 미국 측은 협정 파기를 선언한 뒤 재협상을 제안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 만기가 도래했다”며 협정 파기 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재협상 불가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이득이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TPP와 NAFTA 파기를 이미 선언했고, 모든 경제협정을 재검토하도록 행정명령을 내려놓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말이다.
아마추어적인 해석을 통해 잘못 끼운 첫 단추를 지금이라도 바로 끼워야 올바른 후속 통상 전략이 도출될 수 있다. 미국 측이 곧 개회 요청할 특별공동위에서 풀어헤칠 요구 보따리에 맞서 우리가 요구할 것들을 준비하는 단계로 이행해야 한다. 그게 한·미 FTA를 파기로 내몰아 더욱 불리한 조건 하에서 재협상하는 사태를 막는 길이고, 더 이상 조약법 해석에 있어 국가 망신이 발생하지 않게 수습하는 길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시사풍향계-최원목] 한·미 FTA 재협상 대응전략
입력 2017-07-05 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