梨大 사태 1년… 아물지 않은 ‘상처’
입력 2017-07-05 05:00
이화여대 재학생 이나영(가명·22)씨는 2016년 7월 30일 ‘그날’을 잊지 못한다. 그날, 이화여대엔 21개 중대 경찰 1600여명이 투입돼 대학 본관을 점거한 학생 200명을 억지로 끌어냈다.
이씨는 “학생들은 최경희 전 총장이 방문한다는 학생처의 문자를 받고 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며 “그런데 우리가 맞닥뜨린 건 방패를 앞세운 경찰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그때 흘렸던 눈물은 ‘믿었던 학교에 대한 배신과 두려움’ 때문이었다”며 “날이 더워지니 다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시위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는 것은 이씨만이 아니다. ‘그날’ 이후 86일 동안 이화여대 교정엔 ‘그날의 기억’이라는 제목을 달고 수십개의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엔 ‘지나가다가 경찰만 봐도 마음이 덜컥덜컥한다’ ‘학교에서 나를 찾아내 징계하는 악몽, 집에서 자고 있는데 경찰에 체포되는 악몽을 꾼다’ ‘눈만 감으면 그 일이 떠오른다’며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화여대가 이런 학생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이화여대는 지난 3월 시위 과정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특별상담소를 열었다. 상담소 관계자는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들 대부분이 시위 경험이 없는 평범한 20대 초반”이라며 “대부분 학생들이 준비 없이 시위에 뛰어들었고 그 과정에서 ‘믿었던 학교’ ‘지키려고 했던 학교’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대학 최초로 운영되는 특별상담소는 말 그대로 ‘특별한’ 상담소다. 지난해 결성된 ‘힐링 TF’에서 대상, 방식, 위치, 인력, 범위를 학생들과 상의했다. 외부에서 섭외한 트라우마 전문 상담가 2명이 풀타임으로 근무하며 학생들을 상담하고 필요하면 약도 처방해준다. 관계자는 “몇 명이 상담을 받고 있는지는 밝힐 수 없으나 그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상담소와 달리 대기시간 없이 원하면 바로 상담 받을 수 있고, 학교 시스템을 통해 신청하는 일반 상담과 달리 100% 처음부터 끝까지 익명이 보장된다. 관계자는 “학생들은 익명에 익숙한 세대다. 익명하에 조직적으로 진행된 시위의 연장선상에서 상담도 익명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학생 측의 요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화여대 시위는 실제로 동문 커뮤니티 ‘이화이언’의 익명게시판 ‘비밀의 화원’에서 구체화됐고 온라인 행동이 발판이 돼 광장까지 나올 수 있었다.
졸업생 김모(26·여)씨는 “다른 시위에선 보통 정신적인 면까지 챙기진 않는다. 학교와 학생이 상처 입었던 것을 서로 치유해주는 느낌이어서 의미 있다”고 말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트라우마 증상은 초동 대처가 중요하다. 초반에 상담을 어떻게 잘 하느냐에 따라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까지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트라우마 전문가들이 즉각적으로 집중 관리해 준다면 학생들에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시작된 이대 사태는 결국 정유라 부정입학 사태로 확산됐다. 당시 이대 사태의 책임자들은 대부분 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최경희 전 총장 징역 2년,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 징역 2년, 남궁곤 전 입학처장 징역 1년6개월 등이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