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사들은 지난해 사상 최대 수준의 호황을 누렸고 올해 1분기도 실적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올해 2분기는 상반기 국제유가 급락에 따른 실적 부진이 예상된다. 정유 부문에 의존하는 사업 포트폴리오로는 이처럼 실적이 롤러코스터를 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은 비정유 부문의 투자를 강화하는 추세다. 본업인 정유 사업보다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비정유 사업이 업계 관심사로 떠오르는 이유다. 여기에는 유가 변동성뿐만 아니라 문재인정부의 경유차 퇴출 기조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유차 퇴출이 현실화될 경우 정유 사업의 실적은 급격히 악화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정유사 맏형 격인 SK이노베이션만 해도 석유 사업의 영업이익 비중은 2015년 57%, 2016년 50%, 2017년 1분기 45%로 계속 감소했다. 반면 화학·윤활유 사업 비중은 2015년 46%, 2016년 53%, 2017년 1분기 55%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에쓰오일(S-OIL)도 비정유 부문이 강세다. 지난 1분기 영업이익 중 정유 부문 영업이익은 32.9%에 그쳤고 석유화학(41.86%), 윤활유(25.24%)를 합친 비정유 부문이 67.1%를 차지했다.
정유업계 올 2분기 영업이익은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한 재고 평가손실, 석유화학 제품 마진 축소로 전 분기보다 20∼30% 하락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지난 1분기 SK이노베이션(1조43억원), GS칼텍스(5849억원), 현대오일뱅크(3548억원), 에쓰오일(3239억원) 등 정유 4사는 총 2조270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그러나 올 2분기에는 총 영업이익이 1조8000억원 수준대로 하락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업황이 불안한 정유 부문보다 비정유 부문 사업의 비중을 늘리는 게 장기적 관점에서 수익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며 “비정유 부문 투자 확대와 정부 정책을 감안하면 정유 사업에 대한 의존도는 계속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전기차 배터리 생산 설비를 배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지난해 25GWh에서 2020년 110GWh로, 2025년에는 350∼1000GWh로 초고속 성장이 예상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월 이사회에서 배터리 생산설비 5, 6호기 추가 증설에 필요한 투자 건을 결의했고 생산설비 건설에 착수했다. 신설되는 배터리 생산설비는 총 2GWh 규모다. 기존 1.9GWh급 생산 능력과 합치면 총 3.9GWh로 연간 14만대의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2018년 상반기 중 충남 서산 배터리 제2공장 증설이 완료되고 같은 해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간다.
신규 생산설비에서 생산되는 배터리 제품은 SK이노베이션이 최근 지속적으로 추가 수주해 온 다수의 글로벌 프로젝트에 전량 공급된다. 이미 향후 7년간의 생산량을 모두 고객사에 공급할 수 있을 만큼 수주 물량을 확보해둔 상태다.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리튬이온배터리분리막(LiBS)과 연성동박적층판(FCCL)을 생산하는 정보전자소재 사업은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IT·전기차 시장 확대에 따른 수요 증가로 1분기 영업이익 117억원을 기록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은 뛰어난 기술력과 안정적인 공급 능력에 대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매년 성장을 거듭해 왔다”며 “국내외 전기차 배터리 시장 공략을 강화해 향후 글로벌 톱3 배터리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700㎞까지 갈 수 있는 배터리를 2020년 초까지 개발하고 2025년에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 30% 점유율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GS칼텍스가 준비하는 미래 성장동력은 바이오케미컬 분야다. 바이오매스 원료 확보부터 생산기술 개발, 수요처 개발까지 사업화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우선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와 연계해 약 500억원 규모의 바이오부탄올 시범공장을 여수에 건설하고 원료 및 다양한 응용제품을 생산하는 중소·벤처기업도 지원할 방침이다. 바이오부탄올은 바이오에탄올에 비해 에너지 밀도가 높아 휘발유와 혼합해 사용할 경우 연비 손실이 적은 강점이 있다. 엔진 개조 없이도 휘발유 차량용 연료로 사용이 가능하다. 기존 연료의 수송 및 저장 인프라를 그대로 이용할 수도 있다.
바이오부탄올은 연료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전망이다. 잉크·접착제·페인트에 쓰이는 접착제나 반도체 세정제, 식품·비누·화장품 등에 향을 넣는 착향료 원료로도 사용된다. GS칼텍스 관계자는 “현재 추진 중인 바이오부탄올 연구·개발 활동이 조기에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신규 아이템 발굴에도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기존 사업 분야에서도 끊임없이 대외환경 변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 및 회사의 지속 성장 발판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오일뱅크는 석유화학 기업들과 함께 수익 구조를 다변화할 계획이다. 지난해 11월 자회사 현대케미칼을 통해 혼합자일렌(MX) 공장을 준공하고 제품 생산에 들어갔다. 현대케미칼은 2014년 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6대 4로 출자해 설립한 합작법인이다. 국내 정유사와 석유화학사 간 첫 합작사업이었다. MX공장 건립에 총 1조2000억원이 투입됐다.
MX는 폴리에스터 섬유나 PET, 휘발유 첨가제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벤젠·톨루엔· 자일렌(BTX)의 원료다. 현대케미칼 공장에서 생산되는 MX는 현대코스모와 롯데케미칼에 공급된다. 그동안 MX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했던 만큼 앞으로는 안정적으로 원료를 조달할 수 있게 된다.
현대오일뱅크는 국내 정유사 최초로 카본블랙 사업에도 진출했다. 카본블랙은 그을음을 가공해 만든 탄소분말로 고무·염료의 주 원료로 쓰인다. 지난해 2월 OCI와 합작해 현대오씨아이를 설립했고 2017년 말 1단계 카본블랙 생산 공장을 준공할 예정이다.
에쓰오일은 총 4조8000억원을 투자해 잔사유 고도화 설비와 올레핀 다운스트림 복합단지를 건설 중이다. 잔사유는 정제 과정을 통해 원유에서 가스와 휘발유 등을 추출한 뒤 남은 값싼 기름이다. 잔사유를 다시 투입해 휘발유나 프로필렌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만드는 설비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이다.
글=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And 경제인사이드] 유가 급락에 경유 찬밥… 정유사들 비정유 사업 콸콸
입력 2017-07-06 05:02 수정 2017-07-06 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