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소기업은 고용의 87.9%, 생산의 50%를 차지한다. 기업체 수로 보자면 대기업이 3000여개인 반면 중소기업은 354만여개에 달한다. 오늘의 경제 성장을 이룩하는 데 있어 생산과 고용의 큰 축을 담당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 중소기업의 상황은 위기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작년 금융감독원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신용위험을 평가한 결과 기업회생 절차 대상과 워크아웃 대상 기업 수가 2009년의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로 나타났다.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경제연구원이 9000여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바에 의하면 3년 연속 영업이익이 이자비용을 커버할 수 없는 한계기업 비중이 2012년 5%, 2013년 7%, 2014년 8.4%, 2015년 9.2%로 증가했다. 이 추세를 그대로 따라간다면 2016년에는 1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도 점점 벌어지고 있다. 1994년에 대기업 임금 대비 78%였지만 2015년에는 60%로 하락했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구조는 대기업으로부터 유발되던 낙수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게 만들었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면서도 중소기업에서 일하려 하지 않는 바람에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중소기업이 저임금과 비정규직이 고착화되는 악순환을 끊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도약하려면 구조조정이 선제돼야 한다. 경제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중소기업은 경제의 체력을 약화시키고 경쟁력을 저하시킨다. 여러 부처의 중복적인 지원을 통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좀비 중소기업들은 빠르게 퇴출돼야 한다.
중소기업이 처한 어려움이 전적으로 대기업 탓이라고 보는 시각은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기업에 매출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를 탈피하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낙수효과가 크지 않은 반도체나 석유화학 제품이 주도하는 경제에서 제살깎기 경쟁을 통해 대기업과의 거래만 성사시키면 특별한 노력 없이 그 열매의 달콤함을 누리던 프레임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중소기업이 갖는 상대적 경쟁력은 빠르게 변하는 경제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술 혁신과 수출에서 찾아야 한다. 데이비드 버치는 1979년 보고서에서 ‘소규모의 고성장 기업이 신규 일자리의 대부분을 창출한다’고 주장한다. 버치에 의하면 미국에서 4%에 불과한 소규모 고성장 기업이 신규 일자리의 70%를 창출한다는 분석이다.
이런 점에서 중소기업청이 2012년부터 ‘고성장 기업 육성 프로젝트’를 실시하게 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중소기업청 자료에 의하면 수출 고성장 기업이 내수 고성장 기업보다 고용창출이 크고, 특히 벤처기업과 기술혁신 중소기업이 고용과 수출 역량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진출을 통해 중소기업이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하고 기술혁신에 대한 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정부의 지원도 단순한 창업 지원이나 금융 지원에서 벗어나 기술혁신과 인력 배양, 수출에 대한 패키지 지원 등의 방향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부는 추경의 30%에 해당하는 3조5000억원을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예산으로 책정하고 있고, 강력한 중소기업 정책 추진을 위해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하는 정부조직법안도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는 중소기업 지원 관련 업무가 통일된 컨트롤타워를 갖게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예산이 늘어나고 부처의 힘이 커진다고 해서 중소기업이 처한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조급하게 자금만 퍼붓던 과거의 정책 실패를 거울삼아야 한다. 현재 중소기업의 상황에 대한 냉정한 인식과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발전적 미래를 위한 청사진에 대해 숙고가 있어야 한다. 그에 따라 계산된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시평-차은영] 좀비 중소기업 퇴출돼야
입력 2017-07-04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