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 과징금 때린 EU 속셈은 ‘美 IT 기업 견제’

입력 2017-07-04 05:00

유럽연합(EU)이 구글에 불공정거래 혐의로 24억2000만 유로(약 3조168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정보기술(IT) 산업을 둘러싼 유럽과 미국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전 세계 산업의 중심이 IT로 재편되면서 앞서가는 미국 기업을 견제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유럽 내에서 점차 높아지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움직임은 세금 부과를 통해 미국 기업의 확장을 막는 것이다. EU는 과징금 부과 외에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앱 선탑재 불공정 행위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탈리아, 영국 등은 과거 구글이 제대로 내지 않은 ‘밀린 세금’을 받아내기로 했다. 프랑스, 스페인 등 다른 나라에서도 구글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구글뿐 아니라 애플이 법인세 감면 특혜를 이유로 EU로부터 130억 유로의 과징금을 받는 등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페이스북 등도 규제에 걸려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냈다.

문제는 유럽 국가 내에 당장 구글 등을 따라잡을 대항마가 없다는 점이다. 싱크탱크인 유럽개혁센터(CER)는 2015년 7월 발표한 정책분석보고서에서 규제 강화를 통해 미국 IT 기업으로부터 유럽시장을 보호하고 유럽 대표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제의 방점은 자국 산업 육성에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 중심인 IT산업은 특성상 1위 기업이 모든 걸 차지하는 승자독식 구조다. 이미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IT 기업 서비스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대체할 서비스가 갑자기 출현하는 건 어렵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이 모든 분야에 적용되면 빅데이터의 중요성이 점차 커진다. 구글 등은 현재 지배력을 바탕으로 빅데이터를 빨아들여 미래 산업에서도 주도권을 쥐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유럽처럼 구글에 ‘밀린 세금’을 걷는 게 당장은 쉽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구글이 검색 시장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글, 페이스북 등이 국내에서 해마다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에 합당한 과세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구글, 페이스북 등의 정보 독점과 이에 따른 불공정행위가 나타나면 규제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특정 기업이 빅데이터를 독점하면 후발주자가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문을 면밀히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국내 IT 업체들은 구글의 앱 선탑재 강요 등에 대해 다시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정위는 2013년 앱 선탑재에 대해 구글에 무혐의 결론을 내린바 있으나 지난해 다시 조사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IT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세계 각국에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구글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자국 기업과 동등한 수준의 과세와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