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권순철 단장 “해외유출 범죄수익, 피해자에 돌려줘야”

입력 2017-07-03 21:03 수정 2017-07-03 23:30

해외로 빠져나간 범죄수익을 수사기관이 직접 국내 피해자들에게 되돌려줄 근거와 절차가 필요하다는 연구논문이 발표됐다.

미국에 빼돌려졌던 금융사기 범죄수익을 환수, 지난 3월 사상 처음 국내 피해자들에게 나눠 줬던 권순철(48·사법연수원 25기·사진) 대검찰청 국제협력단장의 제안이다. 범죄가 초국가적으로 확대되는 경향 속에서 피해자들의 실질적 보호 대책을 강구한 논문이어서 주목된다.

3일 대검에 따르면 이 같은 문제의식을 담은 권 단장의 ‘해외유출 범죄피해 재산의 피해자 환부사례 연구’ 논문이 ‘형사법의 신동향’ 제55호에 게재됐다. 권 단장은 범죄피해 재산을 국가가 몰수하는 대신 피해자들에게 직접 돌려주는 미국 몰수면제 제도의 국내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간 범죄 피해자들의 재산 보호는 민사의 영역인 것처럼 간주됐지만, 수사기관의 직접적 개입이 효율적인 때가 분명 있다고 권 단장은 지적했다.

실제 금융사기 범죄는 피해액이 일반 경제사범의 수준을 뛰어넘었고, 장기간 수사 이후에는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 환부가 어려워지는 추세다.

조희팔 사건의 경우 전국 24곳 유사수신 법인에 모인 돈이 5조715억원, 피해자만 7만명이 넘는다. 조희팔 피해자 1만7000여명이 공탁금 720억원을 두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소장 송달조차 원활하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서 피해액 복구는 점점 불가능해졌다고 권 단장은 지적했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수사기관의 역량을 초기부터 활용해야 하며, 이를 위한 법적 근거가 우선 마련돼야 한다는 게 권 단장의 주장이다.

권 단장은 수사 초기에는 은닉된 범죄피해 재산을 발견하기 용이하며 선처를 바라는 범죄자의 협조를 이끌기도 쉽다고 진단했다. 피해자들 역시 수사 초기에는 단체를 구성해 조직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었다.

연구논문은 권 단장이 나름대로 통찰한 현실적 법조 환경으로 뒷받침됐다. 미국의 몰수면제 제도를 벤치마킹할 때 한국 법률구조공단의 역량을 활용하자는 식의 구체적인 방안도 제안했다. 다만 무분별하게 수사기관의 역할에 기대는 부작용을 우려, 특경가법상 다액 재산범죄, 기업형 사기범죄, 범죄단체에 의한 재산범죄 등으로 일단 합리적인 경계선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론적 사색이 아닌 실제 경험을 토대로 작성됐다는 점은 이번 논문의 큰 특징이다.

권 단장이 미국 법무부로부터 환수한 다단계 범죄수익을 691명에게 직접 반환할 때, 피해 10년 만에 대검 환부지원팀의 연락을 받은 피해자들은 “보이스피싱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다. 권 단장은 종래에는 미국과 일본처럼 한국도 범죄피해금 환부의 범위를 적극적으로 넓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현대 국가에 있어서는 국민은 더 이상 국가의 배려를 받는 객체가 아니라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주체로 격상되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