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910000 엉뚱한 등록번호에… 난민 청년 ‘굴곡진 삶’

입력 2017-07-03 05:03

‘910000’.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만난 요세프(26)씨가 지갑에서 꺼내 보여준 외국인등록증에는 그의 생년월일이 1991년 0월 0일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그는 “1991년에 태어난 것만 알고 생일을 모른다고 했더니 이렇게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요세프씨는 아프리카 북동쪽 조그만 나라 에리트레아에서 태어났다.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와 30년째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다.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사망했고, 아버지도 전쟁에 징집된 뒤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12살 무렵 살아남기 위해 외국으로 도주했다”고 했다. 몰래 배를 타고 필리핀에 가서 난민 지위를 획득했지만 거기서도 살해 위협을 받았다.

10여년을 시달리던 요세프씨는 다시 배를 타고 한국으로 왔다. 2014년 7월 24일 국내에서도 난민 지위를 획득했다. 같은 해 8월 8일 외국인등록증을 받았다. 그는 당시 “안전한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뛸 듯이 기뻤다”고 했다.

문제는 담당 공무원이 엉뚱하게 정해준 외국인등록번호였다. 어릴 때 출국해 생일을 모른다는 그에게 전남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담당 공무원은 ‘0000’이란 번호를 붙여줬지만, 다른 이들은 “이런 등록번호가 어디 있느냐”며 도무지 믿지 못했다.

휴대전화도 개통할 수 없었다. 대리점마다 생년월일이 제대로 표기돼 있지 않은데 어떻게 개통을 해주겠느냐고 답할 뿐이었다. 난민을 채용하는 곳에 면접시험을 보러 가도 외국인등록증을 보고는 “위조 아니냐”며 의심했다고 했다.

건강보험료를 내고도 혜택을 못 받았다. 경기도의 한 회사에 다닐 때 그는 인근 병원을 찾았다. 회사에서 건강보험을 가입해두었지만 병원에선 “찾을 수 없다”고 했다. ‘910000’으로는 건강보험 가입이 안 돼 회사에서 임의로 ‘910202’로 했기 때문이다. 외국인등록증과 숫자가 달라 그는 결국 치료를 포기했다.

요세프씨는 여러 차례 한국 정부에 호소했다. 그는 “최초로 발급받은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를 비롯해 대전 출입국관리사무소,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 등을 돌아다녔지만 모두 자신의 관할이 아니라고 하거나 바꿔준 전례가 없다고만 했다”고 말했다. 올해 3월 수원 출입국사무소에서 등록증을 재발급받을 때도 바꿔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2일 “외국인등록번호는 여권번호나 여행증명서를 토대로 작성한다”며 “외국인이 수정을 요청하면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요세프씨의 경우는 당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한국에 입국해 아예 여권이 없었다. 자신의 생년월일을 알기 위해 에리트레아 공관을 방문할 수도 없다. 본국으로 강제 송환될 가능성이 크다. 에리트레아는 체포와 구금을 자행하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강제노역을 평생 시키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유엔에서 해당 국가 난민에게 우선 지정권을 줘 보호할 정도다.

아시아의친구들 김대권 대표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난민 행정 시스템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샘플”이라며 “법무부에서 피해자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그동안 발생한 상황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 고지운 변호사는 “난민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탁상행정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글=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