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스 루트를 가다] 中 은둔의 마을에 한인 첫 해외교회 있었다

입력 2017-07-03 00:03
중국 지린성 지안시 양쯔구의 산속에 형성됐던 옛 한인촌 이양자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이양자교회’ 표지석. 작은 사진은 바위에 새겨진 ‘耶蘇敎 初立 1898 됴선人’ 글귀.
이덕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장(왼쪽)이 존 로스 루트 답사팀원들을 대상으로 이양자교회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耶蘇敎 初立 1898 됴선人’(야소교 초립 1898 조선인)

‘조선인이 1898년에 기독교 교회를 처음 세우다’라는 뜻을 담은 열두 글자가 약 2m 높이의 둥그스름한 자연석에 세로로 새겨져 있었다. 이 표지석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의 ‘존 로스 루트’ 답사팀이 지난달 27일 방문한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양쯔(樣子)구의 ‘이양자마을’ 입구에 서 있었다.

최초의 해외 한인교회가 있던 자리

광개토대왕비와 장수왕릉으로 유명한 지안에서도 깊은 산속에 숨어 있는 이양자마을은 최초의 해외 한인교회가 있던 곳이다. 하지만 그 흔적은 1990년대 초반 마을 입구에서 발견된 교회 표지석뿐이었다.

현지답사에 동행한 유관지 북한교회연구원장은 “설립 시점으로 볼 때 이양자교회를 만주 지역의 첫 번째 한인교회이자 최초의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로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다면 압록강을 건너 험한 산골짜기로 숨어 들어온 조선인들은 누구였을까.

기독교역사연구소 등에 따르면 임오군란(1882) 후, 이에 연루됐다 도망간 군인이나 좌천된 자들 가운데 압록강을 넘은 이들이 많았다. 잡히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었기에 이양자마을처럼 공권력이 미치기 힘든 곳으로 숨어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불안함과 두려움을 떠안은 채 은둔의 삶을 이어가던 그들에게 복음의 불씨를 건넨 주인공 또한 궁금해졌다.

존 로스와 김청송의 만남

존 로스 선교사는 1882년 3월, 최초의 한글성경 누가복음을 발간했다. 앞서 그는 성경 인쇄를 준비하면서 한글을 아는 ‘식자공(활자를 원고대로 조판하는 사람)’을 필요로 했는데, 조선인 김청송이 그 일을 맡았다.

매약(賣藥)행상(약장사)이었던 김청송은 돈이 떨어져 갈 곳 없는 처지로 로스 선교사를 찾아왔다. 김청송은 말이 어눌하고 일하는 속도가 느렸다. 하지만 누가복음 글자 하나하나를 심어 넣으면서 성경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작업을 마칠 무렵에는 로스를 찾아가 자청해서 세례를 받는 ‘기적’이 벌어졌다.

김청송은 이후 전도자의 삶을 산다. 성경 봇짐을 지고 고향인 지안 일대를 돌며 복음을 전했다. 1884년 겨울에는 로스가 동료인 웹스터 선교사와 함께 1000㎞ 가까운 긴 여행 끝에 지안에 도착, 순회 전도에 나섰다. 이들은 이듬해 여름까지 28개 마을에서 100여명의 조선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이 같은 사료를 바탕으로 “김청송을 통해 지안 일대에 퍼진 복음이 이양자마을에도 전해졌고, 신자들과 교회가 생겼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이덕주 기독교역사연구소장은 설명했다.

40여명의 답사팀원들은 현장을 떠나기 전, 숨어 살면서 용기를 내 복음을 받아들인 신앙의 선배들을 떠올리며 이런 찬송을 합창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찬송가 336장)

지안=글·사진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