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손익계산서] ‘동맹·사드’ 불안 해소… ‘무역’은 짐

입력 2017-07-02 18:42 수정 2017-07-02 22:40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워싱턴의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공동 언론발표를 마친 뒤 함께 걸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등을 감싸고 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최소 4년간 남북문제와 한·미 관계의 주요 현안들을 대화하고 이견을 조정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에서 한반도 평화통일 환경 조성을 위한 우리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워싱턴=이병주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받는 성과를 얻었다. ‘제재와 대화 병행’ ‘단계적 접근법’ 등 문재인정부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 간 ‘엇박자’ 우려도 일단 해소됐다. 사드 배치, 대북 평화정책, 한·미 군사훈련 축소 등 진보정권의 움직임에 대한 미국 조야(朝野)의 의구심도 상당 부분 불식됐다는 평가다. 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노골적으로 요구한 미국의 경제 공세 대응과 한·중 관계 재설정이라는 난제를 남겼다.

한·미 두 정상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회담 후 채택한 공동성명에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통일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했다”는 문구가 있다. 또 “양 정상은 제재가 외교의 수단이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올바른 여건 하에서 북한과의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도 했다.

미국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주도권을 인정한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2013년 5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에서도 미국 측은 ‘한국 주도의 전방위 외교’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한국이 쥐고 대북제재 공조를 위한 다각적 외교를 펼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후 대북 접근법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를 둘러싸고 한·미동맹 이완 우려가 팽배하던 현재 맥락에선 ‘주도적 역할’에 대한 의미가 완전히 달랐다는 평가다.

일단 문 대통령의 방미로 새 정부의 대북정책 및 한·미동맹 기조에 대한 우려들이 해소됐다. 동시에 문재인정부는 더욱 과감한 대북정책을 시도할 재량권도 얻었다. 문 대통령은 1일 워싱턴 백악관 블레어하우스에서 특파원 간담회를 열고 “북핵 문제에서 대화 가능성을 열고 평화적으로 해결토록 한 것, 남북문제를 한국이 주도토록 한 것, 미국이 남북대화에 지지를 표명한 것 등이 큰 성과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과 가까이 있는 한국의 감이 더 좋지 않겠느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도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2일 밤 귀국한 뒤 인사말을 통해서도 “한반도 문제를 우리가 대화를 통해 주도해나갈 수 있도록 미국의 지지를 확보했다”며 “하나씩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풀면서 가겠다. 당당하고 실리적으로 우리 문제를 해결해가겠다”고 말했다.

남은 과제는 미국의 경제 공세를 어떻게 막아내느냐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모두발언과 공동 언론발표에서 FTA 재협상,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 양국 합의에 없는 내용을 쏟아냈다. 일단 자국 여론을 의식한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행동이라는 견해가 많지만 우리 정부로서도 대응책 마련이 불가피해졌다. 백악관도 회담 종료 직후 “트럼프 대통령 지시로 미 무역대표부가 FTA 재협상을 위한 공동특별위원회 소집을 한국 측에 요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FTA 재협상은) 합의에 없는 얘기”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에 만족할 수 없었는지 재협상을 별도로 얘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한·미 FTA 발효 이후 상품에서는 미국이 적자를 봤지만 서비스에서는 한국이 적자를 봐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다”면서 “그래도 시정의 여지가 있다면 실무 태스크포스를 구성, FTA 영향 등을 조사하고 분석해 평가해보자고 역제의하는 것으로 끝났다”고 설명했다.

한·중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도 난제다. 문 대통령은 미 의회와 싱크탱크를 방문해 여러 차례 “사드 배치를 철회할 의도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회담에서 사드 문제가 수면 위로 돌출되지 않았던 것도 회담 전에 이미 우리 측이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한 측면이 컸다. 사드 배치 철회를 내심 기대하던 중국으로서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미 정상 간에 사드와 관련해서도 모종의 합의가 있었겠지만 중국의 반발과 남남갈등을 우려해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제부터는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가 관건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한·중 관계의 향방은 7∼8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5일 다시 독일로 떠난다. 문 대통령은 G20 회의 기간 한·미·일 3국 정상만찬 등 다양한 일정을 소화한다.

글=조성은 기자, 워싱턴=강준구 기자, 전석운 특파원 eyes@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