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찬희] 슘페터, 그리고 비전 2030

입력 2017-07-02 19:21

후텁지근한 공기가 무거웠던 2006년 8월 30일. 기획예산처에서 200쪽 가까운 보고서를 보도자료라며 출입기자들에게 뿌렸다. 제목은 ‘함께 가는 희망한국, 비전 2030’.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동반성장의 국가 발전 패러다임’이란 문구는 멋졌다. 하지만 너무 장밋빛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재원 대책은 공허하고, 너무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노무현정부는 정권 말에 때 아닌 미래보고서를 냈다며 여기저기에서 타박을 들어야 했다. 그래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보고서의 파편들은 수면 위로 떠올랐었다.

얼마 전 비전2030 보고서를 찾아내 읽은 건 순전히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덕분이다. 변 전 실장은 비전2030 작업을 지휘했었다. 그는 최근에 펴낸 책 ‘경제철학의 전환’에서 “지금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상위 목표는 비전2030을 수립하던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했다. 이어 슘페터식 성장 정책을 제안했다. 2009년 로런스 서머스 미국 국가경제위원장이 “21세기는 그의 세기”라고 했던 그 슘페터 말이다.

조지프 알로이스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 1883∼1950)는 독특한 이력의 경제학자다. 조국 오스트리아의 재무장관 자리에서 7개월 만에 쫓겨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학문의 꽃을 피웠다. 그리고 대공황(Great Depression)을 만났다. 동갑내기이자 경제학의 두 거물인 존 메이나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와 슘페터는 대공황을 놓고 시각 차이를 보였다.

케인스는 불황의 원인을 수요 부족이라고 판단했다. 국가가 금융과 재정정책을 혼합해 ‘유효수요’를 일으키면 불황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했다. 이와 달리 슘페터는 불황을 건강에 좋은 ‘냉수마찰(cold shower)’로, 기업가의 혁신이 부족해 빚어진 현상으로 규정했다. 낡은 것이 파괴되고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경기는 불황에서 호황으로 진동한다고 봤다.

케인스는 각광 받았고, 케인스학파라는 추종자까지 생겼다. 반면 슘페터는 성공한 경제학자였지만 늘 고독했다. 그랬던 슘페터가 다시 대중 앞에 등장한 계기는 글로벌 금융위기다. 반복되는 불황과 위기, 저성장을 돌파할 도구로 혁신이 떠올랐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기업가의 혁신, 창조적 파괴는 굉장한 설득력을 갖게 됐다.

‘슘페터 열풍’은 우리에게도 다가왔다. 며칠 전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장급 이상 간부들과 워크숍을 하면서 변 전 실장의 책을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변 전 실장은 책에서 수요 확대와 정부 주도에 초점을 맞춘 경제성장 전략을 버리라고 말한다. 새로운 공급 혁신(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시장)으로 경제 구조를 바꾸자고 제안한다. 책은 비전2030에서 제시한 ‘동반성장 패러다임’과도 맞닿아 있다. 비전2030은 성장전략으로 ‘혁신’ ‘균형성장’ ‘시장 주도’를 외쳤었다.

비전2030에는 50대 핵심 과제가 제시돼 있다. 여전히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난제(難題)들이다. 보육·간병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해외자원 개발 및 신재생에너지 활성화, 국립대 통폐합·특수법인화, 정년조정 및 임금피크제 확대, 국민연금·건강보험 개혁….

11년 묵은 숙제를 바라보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가 생각났다. 우리가 경제 성장을 갈망하는 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 ‘함께 잘사는 사회’로 나가기 위해서다. 성장과 분배, 모두에서 덫에 걸린 한국 경제는 뿌리부터 변화가 필요하다. 매일을 힘겹게 살아내는 서민에게 케인스든, 슘페터든 중요치 않다. 비전2030이든, 제이노믹스(문재인정부 경제정책)든 젊은이들이 이 땅을 ‘헬조선’으로 부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정책 결정권자들이 가슴 깊이 새겼으면 한다.

김찬희 경제부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