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사실상 선언한 뒤 ‘공정한 거래’를 강조하면서 앞으로 구체적인 사안을 둘러싸고 양국 간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전 한·미 FTA가 재협상 중이라는 사실을 전격 공개했다. 그러면서 “재협상은 양측에 공정한 거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도 확대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자동차와 철강 제품들이 한국의 무역 장벽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하루 전인 29일에도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 문제와 새로운 무역협정(new trade deal) 등을 논의했다”고 했다.
이는 단순히 한·미 FTA 재협상뿐만이 아니다. 미국 경제전문지인 포브스는 상무부와 무역대표부가 조만간 ‘미국 무역 적자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할 계획이며, 통상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두 정상의 회담은 결코 시기상조가 아니라고 전했다.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 한국 정부는 미국 현지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협상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0일 한국무역협회 이동복 통상연구실장은 “미국 정부를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역수지 개선보다는 한국 기업들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끔찍한(horrible)’이란 단어를 써가며 한·미 FTA의 재협상 내지는 폐지를 주장해 왔다. 원인은 무역수지 불균형이다. 한·미 FTA 때문에 미국의 대한(對韓) 무역수지는 적자인 반면 한국의 대미(對美) 무역수지는 흑자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주장에 ‘상호 윈-윈’이라는 말로 방어했다. 만찬 직전 가진 미 의회 상하원 지도부와의 간담회에서도 문 대통령은 스테니 호이어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의 “한·미 FTA 이행에 관해 답변해 달라”는 질문에 이같이 설명했다. 상품교역에서 한국의 흑자가 많지만 서비스 분야에선 미국의 흑자가 많아 이익의 균형이 맞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한국 정부의 논리가 미국 정부를 설득하는 데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도 “미국 측에서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무역수지의 불균형을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무역수지 개선보다는 한국 기업이 미국 현지 투자에 나서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시간은 걸리지만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지으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과 함께 방미 길에 오른 기업들은 앞으로 5년간 40조원을 미국에 투자키로 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투자는 한·미 FTA 이전에 비해 3배가량 증가했다. 누적 투자액도 배로 늘었다. 그중 눈여겨볼 기업이 CJ제일제당이다. 지난 28일 미국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서밋’에선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가 한·미 FTA의 성공적인 사례로 소개됐다. 에드 로이스 하원외교위원장은 ‘비비고 만두’의 제품 자체도 훌륭하지만 한·미 FTA의 틀이 있었기 때문에 플러튼에 공장을 짓고 미국인을 고용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 기회에 미국과는 모든 걸 개방하는 새로운 형태의 자유무역을 진행해 불만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강준구 기자, 세종=서윤경 기자
김혜림 선임기자 eyes@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그래픽=이석희 기자
트럼프 ‘공정한 거래’ 강조, FTA 둘러싼 진통 불가피
입력 2017-07-0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