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3명은 법정에 없었다. 이미 숨지거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기나긴 인고와 신산(辛酸)의 세월은 유족들의 몫이었다. 고인을 대신해 아들들이 최후진술을 이어갔다. “우리 집안은 멸문지화를 당했습니다. 어른 세 분이 한꺼번에 다 사라지셨고 자녀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간첩이라고 발표했으니 그걸 믿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지요. 간첩으로 조작된 아버지의 고통이 어떠하셨을까, 가슴이 찢어집니다.” 이윽고 재판부의 무죄 선고가 내려지자 유족들은 통한의 눈물을 쏟아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피고인들은 한 줌 흙이 됐고 유족들의 상처는 무죄로도 치유될 수 없을 만큼 깊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29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사형을 당한 고 최을호씨와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고 최낙전씨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34년 만의 재심에서 무죄가 난 것이다. 김제 간첩단 사건은 1982년 전북 김제에서 농사를 짓던 최을호씨가 북한에 나포됐다 돌아온 뒤 조카인 최낙전·최낙교씨를 간첩으로 포섭해 간첩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날조된 것이었다. 최씨 등은 40여일간 고문기술자 이근안씨 등의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허위 자백을 했다. 결국 재판에 넘겨진 최을호씨와 최낙전씨는 1심에서 각각 사형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와 상고는 차례로 기각됐다. 최을호씨는 1985년 사형 당했고 최낙전씨는 9년을 복역하고 석방됐지만 4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재판부는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사법부의 진솔한 반성에 박수를 보낸다. 여기에 더해 국가와 검찰은 합당한 배상과 함께 과거의 불법 행위와 잘못된 판단에 대해 유족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 사과는 화해의 첫 출발이다.
[사설] 김제 간첩단 무죄… 사법부 사과로 끝나선 안 돼
입력 2017-06-30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