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나. 내일은 뭐라고 기도해. 기도 잘 못하면 애들이 또 놀린단 말이야.”
주일예배 대표기도를 맡은 초등학교 3학년 딸의 볼멘소리에 박현국(가명·40) 목사는 뭐라 답하지 못했다. 얼마 전부터 딸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목사 딸이면 다 알고, 다 잘해야 돼?”
문제의 발단은 최근 교회학교 초등부 분반공부 시간에 교사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였다. “넌 목사님 딸이 이것도 모르니.” 이후 친구들은 ‘목사님 딸이…’라는 말을 앞에 붙여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평가한다고 했다.
김상현(가명·37) 목사는 지난달 신학대학원 동문 모임에서 한 선배의 토로를 들었다. 중학교 3학년인 그 선배의 아들은 최근 들어 술, 담배를 하고 동급생들을 때리는 등 엇나간 행동을 자주 한다고 했다. 하루는 날을 잡고 호되게 야단을 쳤는데 아들이 절규하듯 쏘아붙였다고 했다.
“내가 이러는 건 다 아빠 때문이야.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봐 평소 말도 제대로 못하게 하고 매번 양보하라고 강요했잖아. 보는 눈이 많다고 맘대로 옷도 못 입게 하고. 그러니까 애들은 날 우습게보지. 선택할 수 있었다면 나는 목사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을 거야.”
아들의 말을 되풀이하던 그 선배는 후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녀에 대한 성도들의 평가가 곧 나에 대한 평가인 것 같아서 아들을 엄하게 키웠어. 특히 다른 부교역자 자녀들보다 못나 보이지 않게 하려고 이것저것 강압적으로 제약을 했던 것 같아.”
헌신과 경건함 등에 있어서 목회자 자녀들의 스트레스 정도가 심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예수대 학생상담센터가 목회자 자녀들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한 결과 ‘나는 늘 착하게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비롯해 ‘내가 잘못을 안 해도 잘못했다고 해야 할 때’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또 ‘교회의 모든 일에서 솔선수범해야 할 때’ 등 만사에 모범이 돼야 한다는 외부의 기대도 목회자 자녀들에게는 커다란 스트레스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몇 년 전 한국지역복음협의회 등이 목회자 자녀 5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3.3%가 ‘타인의 시선’, 16.2%가 ‘부모님의 지나친 요구’를 견디기 힘들다고 답했다.
미국의 대표적 복음주의 지도자인 존 파이퍼 목사의 아들 바나바스 파이퍼는 유명 목사의 아들로 살아오면서 느낀 애환을 담아 발간한 책 ‘더 패스터스 키드’에서 “교인들은 목사의 자녀가 신앙심이 좋고 교회를 사랑하며 가족과의 관계가 좋을 거라 생각한다. 때문에 난 늘 가면을 써야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목사 자녀도 때론 못된 짓도 하고 부모에게 반항하면서 다른 아이와 다를 바 없이 성장한다”고 밝혔다.
예수대 임신일 교수는 “목회자인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 자녀에게 함께 고통을 견디는 훈련처럼 인식돼선 안 된다”면서 “목회자 자녀들이 부모와 건강하게 분리돼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목회자들의 부모교육과 성도들의 인식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이사야 기자의 부교역자 대나무숲] 목사님 자녀로 사는 법
입력 2017-07-01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