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K리그 출범과 함께 토종 공격수들은 외국인 공격수들과 힘겨운 경쟁을 벌여 오고 있다. 과거 토종 공격수들은 외국인 공격수들에게 크게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1990년대 후반 황선홍, 김도훈, 최용수 등은 존재감에서 외국인 공격수들을 압도했다.
하지만 지난 30일 현재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득점 톱10에 이름을 올린 토종 공격수는 양동현(포항 스틸러스)뿐이다. 나머지 9자리는 모두 외국인 공격수가 차지하고 있다. 2013 시즌 득점 톱10에 든 토종 공격수는 5명이었다. 2014 시즌과 2015 시즌엔 각각 6명과 5명의 토종 공격수가 톱10에 포진했다. 지난 시즌 3명으로 줄어들더니 이번 시즌 중반엔 1명으로 급감했다. 최근 들어 토종 공격수들이 맥을 추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현재 K리그 득점 선두엔 12골을 기록 중인 자일(전남 드래곤즈)이 올라 있다. 양동현은 11골로 2위를 달리고 있다. 3위부터 10위까지는 모두 외국인 공격수들이 점령하고 있다. 2009 시즌 22골을 넣은 이후 지난 시즌까지 8시즌 연속 K리그 두 자릿수 골을 기록했던 38세 베테랑 이동국(전북 현대)은 이번 시즌 햄스트링(허벅지 뒷 근육) 부상을 당한데다 주전 경쟁에서도 밀려 11경기 3골에 그치고 있다. 2015 시즌 득점왕 김신욱(18골·전북)은 컨디션 난조를 겪으며 지난 시즌 33경기 7골, 이번 시즌 17경기 6골로 주춤하고 있다. 지난 시즌 광주 FC 소속으로 20골을 기록해 득점왕과 MVP를 석권했던 정조국(강원 FC)은 이번 시즌엔 부상 악재를 만나 9경기 3골로 부진하다. 최근 5시즌 동안 자주 득점 톱10에 이름을 올린 토종 공격수는 이동국, 김신욱, 이종호(울산 현대) 정도다.
최근 K리그 외국인 공격수들은 기량은 예년 같지 않다. 대부분 팀들이 긴축 재정 때문에 특급 외국인 공격수를 영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축구가 큰돈을 풀어 세계 축구시장에서 선수들의 몸값이 크게 오른 탓에 K리그 팀들은 특출한 기량을 갖춘 외국인 공격수 영입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외국인 공격수들의 수준이 떨어졌는데에도 토종 공격수들이 부진하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최근 5년간 국내 선수들은 매 시즌 도움 ‘톱10’에 6∼8명 정도가 이름을 올렸다. 2013 시즌 6명, 2014 시즌 8명, 2015 시즌 6명, 지난 시즌 7명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번 시즌엔 도움 톱10에 든 선수가 모두 국내 선수들이다. 축구의 꽃인 골을 외국인 공격수들이 독차지하고 국내 선수들은 골 도우미로 전락한 꼴이다.
토종 공격수들이 하향 곡선을 그리는 데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우선 토종 공격수에 대한 감독의 배려가 줄어들었다. 승강제가 도입돼 성적 압박이 심해지자 감독들은 외국인 공격수에 의존하게 됐다.
김도훈 울산 감독은 “내가 일본 J리그에서 뛸 때 감독들은 용병과 함께 자국 공격수를 출전시켜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 감독들도 토종 공격수가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K리그 팀들이 외국인 공격수만 바라보면 토종 골잡이는 씨가 마를 수밖에 없다”며 “결국 한국 대표팀은 국제대회에서 골 결정력 부재라는 고질병을 고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실제로 한국 대표팀은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믿을 만한 원톱 공격수가 없어 고전하고 있다.
토종 공격수는 골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자신을 더 채찍질해야 한다. 어떻게든 골을 넣겠다는 집념이 없다면 평범한 공격수밖에 되지 못한다. 유소년 시절부터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고 인성, 체력, 기술 등을 두루 갖추도록 노력해야 토종 공격수로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토종 공격수가 외국인 공격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날이 올까. 전망은 밝지 않다. 미드필더 선호 현상 때문이다. 과거엔 스트라이커가 되려는 선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공격에 재능을 보이는 많은 유소년들은 외국인 공격수들과의 경쟁을 기피해 너도나도 미드필더가 되려고 한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한국 축구의 레전드 박지성을 롤모델로 삼다 보니 미드필더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K리그 ‘토종 골잡이’ 실종사건
입력 2017-07-0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