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장진호 용사 없었다면 제 삶도 없었을 것”…‘크리스마스의 기적’ 평가

입력 2017-06-29 18:00
문재인 대통령에게 장진호(湖) 전투와 흥남철수작전은 아픈 개인사와 혈맹의 존재를 모두 아우르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미국 방문 일정으로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은 것도 한·미동맹이 전후 세대를 비롯한 국민과 직결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문 대통령은 장진호 전투 기념비에 헌화하며 흥남철수를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부모의 일화도 소개하며 관계자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했다.

문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에 앞서 “(흥남철수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완벽하게 성공했다. 1950년 12월 23일 흥남부두를 떠나 12월 25일 남쪽 바다 거제도에 도착할 때까지 배 안에서 5명의 아이가 태어나기도 했다”며 “크리스마스의 기적. 인류 역사상 최대의 인도주의 작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항해 도중인 12월 24일 미군이 피난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사탕을 한 알씩 나눠줬다고 한다”며 “비록 사탕 한 알이지만 참혹한 전쟁통에 그 많은 피난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준 따뜻한 마음씨가 늘 고마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2년 후 저는 거제도에서 태어났다. 장진호 용사들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거듭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미국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헌화 기념사를 수차례 가다듬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직접 여러 차례 줄을 긋고 수정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헌화 후 기념비 우측에 산사나무를 기념 식수했다. 문 대통령은 “산사나무의 별칭은 윈터 킹(Winter King)이다. 영하 40도 혹한 속에서 투혼을 발휘한 장진호 전투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등병으로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스티븐 옴스테드 예비역 미 해병대 중장에게는 90도로 허리 굽혀 예를 표했다. 옴스테드 예비역 중장은 “사흘 동안 눈보라가 몰아쳐 길을 찾지 못했는데 새벽 1시쯤 눈이 그치고 별이 보여 그 별을 보고 길을 찾을 수 있었다”며 당시 처절했던 전투 상황을 설명하고 기념 배지를 선물했다. 그가 언급한 별은 이른바 ‘고토리의 별’로 불린다.

문 대통령은 흥남철수작전을 수행했던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로버트 러니 전 제독 등 장진호 전투, 흥남철수작전 관계자들과 세 차례 기념촬영을 했다. 러니 제독은 “한·미동맹은 피로 맺어진 관계”라며 편지를 전달했고 메러디스 빅토리호 사진도 선물로 전달했다. 헌화 행사 시간은 당초 40분에서 1시간10분으로 늘었다. 문 대통령은 레너드 라루 선장의 수도사 시절 친구들을 만나 그의 생존시절 얘기도 들었다. 로버트 넬러 미 해병대사령관은 “한·미 양국 해병대는 형제와 같다. 부르면 언제든 우리는 달려가겠다”고 말했다.

워싱턴=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