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 어머니들 권리행사… 이 정도 불편쯤은 괜찮아요”

입력 2017-06-30 05:02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 500여명이 29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비정규직 완전철폐와 근속수당 인상을 요구하며 집회를 벌이고 있다. 아래 사진은 서울 중랑구 한 중학교에서 밥과 국 대신 빵과 우유를 배식하려고 준비해 둔 모습. 최현규 기자, 뉴시스

29일 전국 1700여개 학교에서 평소와 다른 점심 풍경이 펼쳐졌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전국학비노조)가 29일부터 이틀간 파업에 돌입하면서 전국 1700여개 초·중·고가 개인 도시락이나 빵, 우유 등으로 급식을 대체했다. 200여개 학교는 단축 수업을 실시했다. 학생들의 식단을 담보로 투쟁을 벌인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학생들은 각자 싸온 점심을 친구들과 나누면서 평소 자신들의 급식을 관리하는 비정규직 직원들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는 등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됐다는 반응도 이어졌다.

서울 중랑구 A중학교의 점심 메뉴는 카스텔라 초코머핀 과일주스 과일꼬치였다. 미리 배포한 급식계획대로였다면 아이들은 밥과 무국 김치 치킨 카프레제샐러드를 먹었겠지만 이 학교 급식 조리원 6명 전원이 파업에 동참해 바뀌었다. 한 영양사는 “피자빵이나 크림빵, 우유는 냉동보관하지 않으면 상할 우려가 있어서 카스텔라와 머핀, 과일주스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학교 측은 미리 학생들에게 알리고 “양이 부족할 것 같으면 간식을 따로 챙겨 와도 좋다”고 공고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급식실에 모여든 학생들은 싫지 않은 눈치였다. 복도 한쪽에서는 마치 소풍을 나온 듯 서로 다른 반 여학생 7∼8명이 둘러앉아 빵과 간식을 펼쳐 놓거나 미리 챙겨온 주먹밥 삼각김밥 과자 등을 나눠먹는 모습도 보였다. 2학년 문모(14)양은 “하루 정도 빵과 주스를 먹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다. 3학년 정모(15)군도 “학교에서 일하는 급식 어머니들이 권리 행사를 위해 나가신 건데 이 정도 불편은 감수할 만하다”고 말했다.

한 교사는 “조회 시간에 왜 급식 대신 빵과 주스를 먹는지 아이들에게 설명해줬다”며 “이런 문제에 대해 잘 모르던 아이들도 막상 자신과 직결되는 문제가 생기니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라”고 말했다. 전국학비노조는 각 지역 교육청 앞에서 총파업 집회를 진행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1만1518개 초·중·고 중 28.5%인 3294곳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1만4991명이 파업에 참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제주 경북 울산 대구 전북을 제외한 12개 교육청 산하 비정규직 노조가 파업했다. 강원도의 경우 145개 학교가 빵과 우유로 식사를 대신했고, 65개 학교는 도시락을 싸오도록 했다. 21개 학교는 단축수업을 했다. 경기도교육청은 도시락으로 대체한 학교의 경우 식재료 상품권이나 식당 쿠폰을 지급토록 했다. 30일엔 대구와 전북 지역에서도 파업에 합류할 예정이다.

중학생 3학년 자녀에게 도시락을 싸줬다는 박모(43)씨는 “파업이 부정적이라기보다는 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며 “매일 같은 메뉴의 급식을 먹던 학생들이 하루쯤 각자 싸온 반찬을 나눠 먹는 것도 색다른 추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학비노조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세대 조합원도 자식 같은 젊은 조합원에게는 비정규직 일자리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파업하고 있다”며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절반인 35만명이 속해 있는 학교에서부터 좋은 일자리 창출의 모범을 보여 달라”고 정부에 호소했다.

글=신재희 기자, 춘천=서승진 기자 jshin@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