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는 가나안 땅 입구에 있는 오래된 도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성을 정탐하기 위해 두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기생 라합의 집이었습니다. 이방여인 라합은 그들을 숨겨줬습니다. 자칫 탄로가 나면 반역자로 몰리고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지만, 라합은 대담하게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도왔습니다. 라합과 정탐꾼의 만남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뤄진 필연이었습니다.
라합은 정탐꾼들을 보고 기회가 찾아왔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 말입니다. 영적인 통찰력과 민감한 분별력 없이는 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회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라합에겐 그런 능력이 있었습니다. 라합은 자신의 민족과 관계없는 세계사적인 흐름을 들었습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라합은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고 말합니다.
라합은 광야에서 살아가던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자신의 집에 찾아온 정탐꾼들에게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사람들을 도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과 조건을 탓하며 자신의 한계를 정합니다.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합니다. 불확실한 것에 함부로 뛰어들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는 라합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는 특별한 눈을 갖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정한 한계를 허물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을 라합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라합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셨고 광야로 인도하셨으며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소문을 통해 들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는 동시에 실체에 대한 의문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엄청난 소문이 진짜라면 더 이상 가망 없어 보이는 절망적인 삶에도 희망의 빛이 드리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늦은 밤 찾아온 두 정탐꾼을 보는 순간 라합은 하나님의 역사가 자신에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두려움을 이기고 행동함으로 역사의 무대 위로 올라섰습니다.
라합이 민족을 배반했다고 손가락질을 당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배신자라는 낙인보다 더 큰 상급을 위해 그녀는 결단하고 또 결단했습니다. 기회는 그렇게 붙잡는 것입니다.
라합처럼 광야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하나님의 뜻이 흘러가는 역사의 방향을 주목하십시오. 4차 산업혁명, 남북통일 등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다가오는 변화와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능력입니다. 라합처럼 생각하고 라합처럼 행동하십시오.
유해근 목사(나섬공동체 대표)
[오늘의 설교] 우연인가 필연인가
입력 2017-07-0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