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문재인정부 코드 맞추는 법

입력 2017-06-29 17:48

관료 시절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던 모 인사는 요즘 입을 다물었다.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해 달라며 인터뷰를 요청하자 “요즘 쓴소리하지 말라는 것 아니에요?”라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정부 때 내리 청와대에서 근무한 관료 출신의 또 다른 인사도 손사래를 쳤다. “요즘 분위기가 그러니 인터뷰는 나중에 하자”고 했다.

아무리 서슬 퍼런 정권 초기라고 해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몸을 사리는 것은 슬픈 일이다. 침묵하도록 만든 것은 문 대통령이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비판하자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범인데 반성 먼저 하라”며 재갈을 물렸다. 그 후 재계는 정부 눈치를 보며 좌불안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레이저 눈빛으로 장관들을 제압했다. 그 결과가 받아쓰기 정부,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침묵한 정부다. 영혼 없는 공무원들은 박근혜정부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정부 각 부처들은 새 정부와 ‘코드’ 맞추느라 바쁘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어 추가경정예산(추경)이 필요 없다던 기획재정부는 일자리 추경의 필요성을 설파하느라 분주하다. 주가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경제지표들은 장밋빛이니 난감할 만하다. 통계청은 우리나라 공공부문 일자리 비율이 8.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1.3%보다 크게 낮다는 자료를 내놨다. 5년 임기 내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를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영국 프랑스 등과 달리 사립학교 교직원 수를 포함시키지 않았고 어린이집과 유치원 보육교사도 쏙 뺐다. 이들을 공공부문으로 포함하면 비율이 13∼15%까지 올라간다는 분석이 있다. 정책 방향 기준이 되는 경기진단과 통계를 정권 입맛 따라 마구 바꿔도 되는 건가.

박근혜정부가 지난해 시작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는 휴지통으로 직행했다. 공공기관장 시절 성과연봉제 도입에 앞장서 민주노총으로부터 임명 철회 요구까지 받았던 기재부 2차관은 취임하자마자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자기 손으로 폐지해야 했다. 공공기관들을 개혁하자고 어렵게 시작했는데 도루묵을 만들면 어쩌자는 건지 걱정스럽다. 교사들도 들고 일어났다.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1년 도입한 교원 성과급제를 없애자고 한다. 서비스·요금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만든 수서고속철도(SRT) 운영사인 SR을 반년 만에 코레일에 합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밀려드는 ‘촛불 청구서’를 모두 들어줄 셈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절대 못 바꾸도록 부동산시장에 대못을 박겠다고 했다. 하지만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못들이 뽑혀나갔다. 지금은 9년간의 이명박·박근혜정부 정책들이 뒤집히는 중이다. 물론 그중에는 전임 정권이 무리하게 밀어붙여 부작용이 큰 정책이 적지 않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공정사회, 정의사회에 대한 요구가 큰 것도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전 정부 정책이라고 무조건 지우거나 바꾸는 것은 문제가 있다. 5년마다 정책이 널을 뛰어서야 나라의 미래가 있겠는가. 엘리트 공무원들을 소신도, 줏대도 없는 정권의 꼭두각시로 만들지 마라.

노태우정부 시절인 1990년 부동산가격이 폭등하고 주가가 폭락하면서 경제가 위기에 처하자 김종인 당시 경제수석이 비서관들을 모아놓고 대책회의를 했다. 그러자 지역균형 비서관인 이석채씨가 정책 뒤집는 것을 비판하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앞으로 가!’ 해서 가고 있는데 ‘뒤돌아 가!’ 하니까 꼴찌가 1등이 되고, 1등이 꼴찌가 되면서 총체적 난국이다.”

세상은 바뀌고 있다. 과거 ‘진보 vs 보수’의 프레임에 갇혀 무 자르듯 재단되는 정책은 없다. 느리고 힘들더라도 사회적 공론화를 거쳐 최적의 답을 찾아가는 ‘달팽이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