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판사 목소리 실린 사법개혁 시동

입력 2017-06-28 21:35 수정 2017-06-28 23:35
양승태 대법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양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사법 블랙리스트’ 논란과 관련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추가 조사 요구를 거부하고 법관회의 상설화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시스

양승태 대법원장이 약속한 사법 개혁의 첫걸음은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상설화다. 일선 판사들의 새로운 목소리가 사법행정에 반영된다면 그간 폐쇄적이고 불투명하다고 지적받던 사법부의 인상도 달라질 것이라는 평가다. 다만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채 전국법관회의가 요구한 추가 조사가 묵살된 점은 다소간의 논란을 빚을 전망이다.

양 대법원장은 28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법제도도 끊임없이 개선되고 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며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 결의를 적극 수용한다고 밝혔다.

그는 △1심 재판의 전면 단독화 △법관인사 이원화와 고등법원 부장판사 보임 △법관 근무평정 및 연임제도 △법관 전보인사와 사무분담 △사법행정권의 적절한 분산과 견제 등 사법 개혁을 위한 일련의 과제들을 열거한 뒤 이를 함께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일선 판사들이 사법 개혁에 나름의 목소리를 전달할 언로가 열린 셈이다. 그간 성토의 대상이던 ‘제왕적 대법원장 권한’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시각이 크다.

양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 개혁을 강조한 점도 주목된다. 법원에 관한 인사·예산·회계 등을 관장하는 법원행정처는 판사들의 ‘엘리트’ 코스였지만 동시에 사법권력 독점화를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동안 법관사회 내부에 사법행정 전반에 관한 불만이 누적돼 왔고 개선 요구가 높다는 점을 절감했다”며 “법원행정처의 구성, 역할 및 기능을 심도 있게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양 대법원장이 말하는 ‘기존의 관행을 뛰어넘는 전면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전국법관대표회의의 결정권이 확실히 규정돼야 한다. 양 대법원장은 추후 내용과 절차를 논의해야 한다며 여지를 뒀다. 판사들이 사법행정에서 얼마나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 단순히 의사를 수렴하는 기구에 머무르는 것은 아닌지 등은 앞으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법원행정처의 컴퓨터를 열어볼 수 없다고 버틴 점은 아쉽다는 평가를 낳았다. 양 대법원장은 “법관들의 컴퓨터에는 제3자에게 공개할 수 없는 성격의 문서가 상당수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양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 직후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진상규명 없이 사법 불신이 회복되기는 어렵다”고 논평했다.

이경원 양민철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