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 등 전격 수용

입력 2017-06-28 18:29 수정 2017-06-28 23:12
양승태 대법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양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사법 블랙리스트’ 논란과 관련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추가 조사 요구를 거부하고 법관회의 상설화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시스

대법원의 진보성향 판사 연구모임 축소 압력 사태와 관련해 일부 판사들로부터 퇴진 요구를 받았던 양승태 대법원장이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 등을 통한 사법 개혁을 약속했다. 하지만 판사들을 뒷조사하고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었다는 의혹을 풀기 위한 법원행정처 컴퓨터 추가 조사는 단호히 거부했다. 전국 판사들이 의결한 추가 조사 필요성을 일축하자 ‘공허한 입장 표명’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양 대법원장은 28일 오후 사법부 내부 전산망인 ‘코트넷’에 글을 올려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 법원행정처 구성·역할 재검토 등을 약속했다. 그는 지난 19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안으로부터의 개혁 논의를 위한 뜻깊은 첫걸음’이라고 평가하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전국 법원의 대표 판사 100명은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두고 지난 19일 회의를 열었고, 21일 결의 내용을 대법원에 전달했었다. 이후 법원 내에서는 양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을 성토하는 여론이 컸다.

양 대법원장은 “나 역시 평소 법관들이 사법행정에 더욱 광범위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 왔다”며 전국법관대표회의를 통해 일선 판사들의 의사를 사법행정 전반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판사 인사를 비롯해 폐쇄적 사법행정을 비판받아온 법원행정처에 대해서도 “개선 요구가 높다는 점을 절감했다”며 “구성, 역할, 기능을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양 대법원장은 다만 ‘블랙리스트’ 의혹 때문에 법원행정처 판사의 컴퓨터를 조사할 수는 없다고 맞섰다. 그는 “법적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법관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열어 조사한다면 교각살우(矯角殺牛·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임)의 우를 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껏 각종 비위 혐의나 위법사실 등 어떤 잘못이 드러난 경우조차 법관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동의 없이 조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양 대법원장의 입장을 확인한 뒤 다시 의견 수렴 절차에 들어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근본적 성찰이 결여된 공허한 입장 표명”이라고 비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