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고·자사고 폐지 논란 공론의 場부터 만들라

입력 2017-06-28 17:36
서울시교육청이 28일 예상을 깨고 4곳의 외고·자사고를 재지정했다. 2015년 ‘2년 지정취소 유예’ 조치를 받은 서울외고와 장훈고·경문고·세화여고(이상 자사고)가 재평가에서 지정취소 기준 점수를 넘어선 것이다. 외고·자사고 지위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이번 결정은 외고·자사고 폐지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새 정부 들어 처음 나온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 현재 서울에는 전국 자사고 46곳 중 절반인 23곳, 외고는 31곳 중 6곳이 있다. 가장 많은 자사고와 외고를 두고 있는 서울시교육청의 이날 판단이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단순히 평가를 통해 미달된 학교만을 일반고로 전환하는 것은 현 고교 체제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엔 한계가 명확하다”며 정부 차원의 고교체제 단순화 정책을 제안했다. 현행법상 시·도 교육감 권한으로는 실질적인 체제 개편이 어렵고 지역별로 추진할 때 우려되는 혼란 등을 감안하면 일선 교육청 차원에서 추진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경기도교육청과 함께 외고·자사고 폐지 입장을 밝혀 왔던 서울시교육청이 사실상 정부로 공을 넘긴 셈이다. 현행법상 시·도 교육감은 5년마다 학교 운영 성과 등을 평가해 지정 목적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인정되면 교육부의 동의를 얻은 뒤 외고와 자사고 등의 지정을 취소할 수 있게 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외고·자사고 폐지를 둘러싼 혼란은 극심한 상황이다. 해당 학교 학부모·교장들은 연일 집회를 열며 집단 반발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 단체들도 이에 가세한 상태다. 지난해 국정 교과서 논란 때처럼 극단적인 이념 대결로 흐르는 양상이다. 교육현장의 불안감과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데도 정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주무 부처인 교육부는 장관 인선 등을 이유로 적극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고 청와대와 국정기획자문위원회도 뚜렷한 방침을 잡지 못한 듯하다. 지금의 혼란을 엄중히 인식하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학교, 학부모, 학생, 교육청, 교육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공동 협의기구 구성이 필요하다. 공론화의 장부터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