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마라톤 ‘칠마회(칠순마라톤동호회)’의 정진원(73)씨는 일주일에 1∼2번 풀코스를 달린다. 광진구그라운드골프클럽의 박정자(75)씨는 일주일에 4∼5일 라운딩한다. 장수 시대를 맞아 스포츠를 즐기는 어르신들이 늘고 있다. 국민일보는 지난 5월 5일부터 4회에 걸쳐 그라운드골프, 코리아버드, 축구, 마라톤 등 다양한 종목에서 스포츠 활동을 하는 청춘 같은 노인들을 만났다. 이들은 한결같이 “운동을 할 때면 나이를 잊어버린다”고 말했다. 본보는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한국 실버 스포츠의 현황은 어떠하며, 활성화 방안은 무엇인지 진단했다.
은퇴 이후 활기찬 노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운동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노인 생활체육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운동을 즐기는 노인들의 숫자와 동호회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해외 선진국에선 스포츠클럽 형태로 노인 생활체육이 활성화돼 있다. 특히 유럽의 스포츠클럽은 건강을 증진하고 소외와 정체성 상실 등 심리적인 상처도 치유하는 안식처 같은 곳이다.
생활체육 선진국인 독일은 1950년대 후반부터 ‘스포츠 제2의 길(Zweiter Weg des Sports)’ ‘황금계획(Der Goldene Plan)’ 등 생활체육 활성화 정책을 추진했다. 이런 정책으로 다양한 생활체육 시설이 전국에 골고루 분포돼 있다. 2015년 기준 독일올림픽스포츠연맹에 소속된 스포츠클럽은 9만여개에 달한다. 가입자는 약 2700만명이다. 독일 전체 인구의 약 33%에 해당한다. 회비는 1인당 월평균 약 1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스포츠클럽은 가입비와 월 회비 이외에 연방 및 주정부, 지방자치단체의 공적 보조금, 기부금, 광고 수익 등을 통해 운영 예산을 마련한다. 또 국가로부터 각종 세금 면제 혜택을 받는다. 따라서 노인들은 금전적인 부담 없이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쉽게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다. 시민 자원봉사자들은 스포츠클럽에서 노인들의 스포츠 활동을 지원한다.
생활체육 전문가인 대구대 산학협력단 김혁출 교수는 “일본은 그라운드골프, 게이트볼 등 노인들을 위한 종목을 개발해 적극 보급하고 있다”며 “한국의 경우 노인 생활체육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한국의 전통놀이인 자치기와 골프를 접목한 ‘자치기골프’ 등 새로운 종목을 만들어도 용품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업체가 없고, 정부 지원도 부족해 무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실버 스포츠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은 많지만 이를 널리 보급하기 위한 지원책과 정부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한국의 실버 스포츠는 주로 걷기나 등산 같은 개인 운동 혹은 동호회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김 교수는 “유럽 국가들은 스포츠클럽을 중심으로 노인들에게 체육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한국도 실버 스포츠 동호회를 실버 스포츠클럽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보다 많은 노인들이 쉽고 값싸게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지역 스포츠클럽이 전국에 100여개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노인들이 이곳에서 스포츠 활동을 하면 좋을 것이다. 노인들에게 이용료를 할인해 주거나 면제해 주는 방안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2016년 실시한 생활체육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꾸준히 운동하는 국민의 비율은 59.5%로 나타났다. 70세 이상의 경우 55.3%로 예상보다 높게 나타났다. 대구한의대 실버스포츠학과의 안찬우 교수는 “젊었을 때 운동하던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운동을 계속한다”며 “운동하지 않는 노인들을 운동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접근성이 좋은 주민자치센터 등에 노인들을 위한 생활체육 공간을 만들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국에 실버 스포츠 관련 학과가 2개밖에 없을 정도로 실버스포츠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실버 스포츠의 중요성은 커질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스포츠 현장의 어르신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미흡하다고 입을 모은다. 칠마회의 김무언(76) 총무는 “마라톤 대회 참가비가 4만∼5만원인데, 노인들에겐 큰 부담이 된다. 노인들에겐 참가비를 면제해 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고양시 70대 축구단’의 이기영(74) 사무국장은 “1인당 월 회비가 3만원인데, 경기장 임대료 등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회장과 고문 등 임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따로 돈을 모아 운영비에 보태고 있는 실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대한체육회도 실버 스포츠 저변 확대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전국 시·군·구 노인시설 1539곳에 생활체육용품 3만8000여점을 지원하는 사업을 벌였다. 체육회는 올해 범위를 확대해 취약계층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전국 시·군·구의 노인시설과 복지시설 2000여곳을 대상으로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체육회 관계자는 “고령층의 생활체육 참여 기회를 확대해 건강 증진과 활기찬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글=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And 엔터스포츠] 나이 잊은 ‘어르신 체육’ ‘클럽’으로 모셔라
입력 2017-06-30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