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를 비롯한 영국 매체들은 2015년 5월 자국의 한 대학 연구팀이 내놓은 연구 결과를 일제히 보도했다. 1960∼2010년 빌보드 차트에 오른 노래 1만7000곡을 분석해 ‘팝의 혁명기’를 정리한 내용이었다. 조사 결과 세계 음악시장은 64년 83년 91년에 크게 요동친 것으로 나타났다. 64년은 비틀스를 위시한 영국 밴드의 미국 진출이 봇물을 이룬 때였고, 83년은 신시사이저가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음악의 ‘질감’이 달라진 해였다.
그렇다면 91년은 어떤 시기였던가. 바로 스눕 독, 나스 등 힙합 뮤지션이 세계적 스타로 급부상한 시점이었다. 당시 연구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91년의 혁명이 가장 진정한 의미의 혁명이었다. 힙합의 등장으로 화음 없는 팝송이 탄생했다.”
세계 음악시장의 거대한 흐름에서 우리나라만 예외일 수는 없다. 90년대부터 힙합 음악은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2010년대 들어서는 음악 트렌드를 선도하는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는 Mnet 힙합 프로그램 ‘쇼미더머니’가 있다.
쇼미더머니의 귀환
쇼미더머니 첫 시즌은 2012년 6월 방송됐다. 래퍼들이 공연을 선보이면, 관객들은 공연비를 책정했다. 래퍼들의 당락은 공연비 액수에 따라 결정됐다. 당시에는 방송가에 우후죽순 생겨났다 사라지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하나로 여겨졌지만, 이 프로그램은 매년 새 시즌을 선보일 때마다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선보이며 힙합 열풍의 견인차가 됐다.
우승을 차지한 로꼬 바비 비와이 등은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경연의 얼개를 띤다고 해서 승부가 전부는 아니었다. 경연에서 탈락하더라도 화려한 무대와 완성도 높은 음악을 선보이면 방송과 동시에 스타로 발돋움했다. 스윙스 씨잼 등이 대표적이다.
쇼미더머니 여섯 번째 시즌이 30일 밤 11시에 첫 방송된다. 이번 시즌에 지원자나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뮤지션 면면을 보면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피타입 넉살 주노플로 양홍원 트루디 등 실력을 인정받은 기성 래퍼가 대거 도전장을 던졌다. 힙합 음악계를 주름잡는 타이거JK 다이나믹듀오 도끼 지코 등은 ‘프로듀서 군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4월 인천 한 체육관에서 열린 1차 예선엔 지원자가 1만2000여명이나 몰렸다고 한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쇼미더머니는 힙합을 가요계의 ‘대세 트렌드’로 만든 일등공신”이라며 “이번 시즌은 한국 힙합의 어제와 오늘을 목격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쇼미더머니가 성공하면서 방송가에는 힙합을 다루는 콘텐츠가 봇물을 이뤘다. ‘언프리티 랩스타’ ‘고등래퍼’(이하 Mnet) 등이 대표적이다. 대표적인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MBC)도 지난해 말 우리나라 역사 이야기를 힙합으로 풀어내며 화제가 됐다.
요즘엔 M2의 프로그램 ‘리스펙트’가 힙합 마니아의 관심을 끌고 있다. M2는 Mnet이 유튜브 등에서 선보이는 디지털 채널로 방송에선 유명 래퍼가 출연해 실력 있는 후배 뮤지션을 직접 소개한다. 음악 페스티벌에도 힙합 뮤지션은 단골손님이다. 다음 달 28∼30일 경기도 이천에서 열릴 ‘지산 벨리록 뮤직앤드 아츠 페스티벌’에는 지코 딘 등이 출연한다.
힙합은 어떻게 대세가 되었나
과거 힙합은 드문드문 히트곡이 나오긴 했지만 비주류의 성격을 띠는 장르였다. 힙합 노래가 히트하려면 감미로운 멜로디에 고명처럼 랩만 포개놓은 형태여야 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면서 힙합의 인기는 갈수록 커졌다. 쇼미더머니 같은 프로그램이 도화선이 됐지만 힙합 본연의 매력을 담은 음악이 쏟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리네어 레코즈 AOMG 같은 힙합 레이블이 내놓는 개성 넘치는 음반들은 대중에게 크게 어필했다. 이들 레이블에 소속된 뮤지션들은 방송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도 스타로 거듭났다.
힙합이 지금 같은 인기를 얻은 데는 힙합 특유의 야성(野性)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면서 거침없이 세상을 비판하는 가사는 젊은층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김봉현 음악평론가는 “래퍼들이 돈이나 성공에 대한 욕망을 드러낼 때, 기성세대에겐 그 모습이 속물처럼 보이겠지만 젊은이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거기에 진정성이 담겼다고 여긴다”며 “힙합은 현재 젊은 세대의 뜻을 가장 강력하게 반영하는 음악일 것”이라고 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난 랩할 게, 맘에 들면 돈을 내”… 돌아온 ‘쇼미더머니’
입력 2017-06-28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