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박상인] 재벌개혁 핵심은 경제력 집중 해소다

입력 2017-06-28 18:26

정부 주도 재벌 중심의 박정희 개발체제는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 경제 발전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 같은 경제 발전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경제권력이 될 정도로 재벌은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것이다.

경제력이 집중된 재벌들은 정치계 관계 사법계 언론계 학계 등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른다. 사회적 의사결정이 공익보다 총수일가의 사익에 부합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재벌 문제의 본질은 경제력 집중이고, 재벌 개혁의 핵심도 경제력 집중의 해소라고 할 수 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의해 발생하는 적폐는 황제경영과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위한 내부거래 그리고 재벌 세습이라는 기업이나 기업집단 내부의 문제를 넘어선다. 재벌의 과도한 수직계열화와 일감 몰아주기는 도전 기업이 혁신할 기회조차 빼앗고, 혁신 경쟁의 소멸은 결국 재벌 기업의 혁신 유인도 감소시키고 있다.

또한 기술 탈취로 재벌 대기업의 하도급 기업은 가격경쟁과 단가 후려치기에 내몰리고 결국 혁신할 유인도 여력도 잃게 된다. 기술 탈취와 단가 후려치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의 근본 원인이 되고, 노동 양극화와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나아가 재벌 세습이 가능한 상황에서 재벌은 도전 기업의 싹을 자르고 진입장벽을 쌓는다. 보다 본질적으로 경제력 집중은 다원주의에 기초한 시장경제와 정치적 민주주의를 형해화하고 있다.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는 재벌 개혁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안고 시작했다. 사실 한국 재벌처럼 경제력 집중이 이미 심각한 상태에서 재벌 개혁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에 문재인정부가 이런 역사적 기회를 놓친다면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더욱 공고화되고, 한국은 양극화와 경제위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중남미형 사이클에 빠질 수도 있다.

어렵사리 조성된 재벌 개혁 기회의 창을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단순하고 불가역적인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 복잡한 재벌의 소유 지배구조를 건드리지 않고 복잡한 행위 규제와 행정력에 의존한 정책은 지속가능한 해법이 결코 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2013년의 이스라엘 개혁은 좋은 시사점을 준다.

단순하고 불가역적인 구조적 개혁은 재벌의 지배구조를 원칙적으로 2층 구조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시키고 주요 금융기업과 주요 실물기업을 동시에 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입법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 물론 이런 개혁작업이 일정 기간을 두고 시행되도록 법안에 명기돼야 한다.

아울러 자사주 문제나 사업 영역 제한 등 세부적인 문제들은 다양한 정책수단 조합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수용성과 효과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도록 해결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개혁과 더불어 기업 거버넌스, 시스템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는 보충적 법의 제·개정도 필요하다.

문재인정부는 범정부적인 기구를 통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재벌 개혁 방안을 내년 지방선거 이전까지는 제시하도록 전력을 다해야 한다. 또한 국민여론 조성과 국회 설득을 병행해 국회가 내년 지방선거 이후 재벌 개혁의 입법을 완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근본적인 재벌 개혁 없이는 문재인정부의 일자리 정책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공공일자리가 재벌 개혁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완충 역할을 할 수는 있으나 민간일자리를 대체할 수는 없다.

재벌 개혁이 완성되면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고부가가치 중간재를 생산하는 중소·중견 기업 중심으로 변모될 것이다. 따라서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의 임금 격차도 완화되고 제조업의 좋은 일자리 창출 능력도 크게 향상될 것이다. 문재인정부의 성패를 재벌 개혁에 걸어라!

박상인(서울대 교수·행정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