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 前남편 살해 협박에 기약없는 도주… 이주여성의 삶

입력 2017-06-28 05:00 수정 2017-06-28 21:27

성폭행을 저질러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출소하자마자 이혼한 아내와 자녀들을 협박한 5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풀려났다. 동남아 출신 전처는 자녀들과 함께 집을 나와 떠돌고 있다. 다문화가정의 이주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법마저 외면한 셈이다.

경기도의 한 경찰서는 전처 A씨와 아이들을 상대로 살해 협박을 한 남편 B씨(58)를 혐의 협박, 아동학대 혐의로 구속 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고 2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만기 출소한 B씨는 교도소 앞으로 마중나간 자녀들에게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다. 과거 B씨는 성폭행, 폭행 등의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됐었다.

이 말을 전해들은 A씨는 자녀들과 함께 살던 곳에서 무작정 나왔다. 전 남편이 언제 나타나 끔찍한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A씨와 자녀들은 경찰에 신고를 한 뒤 집을 나왔고 시설의 보호를 받게 됐다.

법원은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이로 인해 A씨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신세가 됐다. B씨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홧김에 말한 것뿐 실제로 살해할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 남편이 풀려난 뒤 A씨는 다시 피난처를 옮겼다. A씨를 보호하던 한 관계자는 “A씨는 집에 가고 싶어 했지만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이주여성의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주여성 상담전화인 다누리콜센터에 최근 3년간 접수된 폭력피해 상담건수는 4만7946건(중복상담 포함)이다. 전체 상담건수의 10%가 넘는다. 지난해에만 1만5519건이다. 매일 40건이 넘는 가정폭력 신고가 이어지는 셈이다. 고명숙 전국이주여성쉼터협의회장은 “여성이 이주여성쉼터에서 보호를 받고 있어도 남편이 쉼터에 전화해 찾아오겠다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고 회장은 “결혼을 하고 들어왔어도 한국어가 서툴거나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사는 다문화가정 여성들은 폭행을 당할 때 도움을 요청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며 “다문화가정 여성에게 가정폭력 대처법을 알리는 일부터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