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 중이지만 일선 공공기관에선 비정규직 채용을 기존 관행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부문 노사 관계를 악화시킨 주범인 성과연봉제는 ‘폐지’ 방침을 정했지만, ‘노사 자율’이라는 이름하에 후속 조치는 공전(空轉) 중이다. 정부 정책에 따라 운영 방침과 예산 등이 바뀌는 공공기관 특성상 개별 정책에 대한 정부 방침이 명확해지기 전까지는 이 같은 혼선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더라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은 민간에도 미칠 영향이 큰 만큼 쫓기듯 하기보다는 긴 호흡을 가지고 차분히 방안을 마련해가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26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6월 들어 현재까지 진행됐거나 진행 중인 비정규직 채용 건수는 모두 514건이다. 비정규직으로 볼 수 있는 청년인턴 채용까지 포함하면 584건으로 늘어난다. 지난해 6월 같은 기간 공공기관 비정규직 채용 공고 건수는 528건(청년 인턴 포함)이었다. 특히 채용 공고 중에는 간호사나 약사, 도로무인카메라 관리 등과 같은 생명·안전 관련 영역의 비정규직 채용도 있었다. 지난 1일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가 ‘일자리 100일 계획’을 발표하면서 공공부문에서 상시·지속 업무와 생명·안전 분야는 비정규직 ‘제로(zero)화’를 하겠다고 밝힌 것과 배치된다.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고용 부담을 우려해 비정규직을 미리 해고하는가 하면 다른 현장에서는 당장 필요한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당장 계약이 종료되는 자리에 다른 비정규직을 채용해 써야 하는데, 정부 정책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성과연봉제 폐지 이후 조치를 놓고 노사 갈등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6일 지난 정부에서 도입된 성과연봉제를 사실상 폐지키로 의결했지만 구체적인 후속 조치는 기관 자율, 노사 협의 사항으로 남기고 사실상 발을 뺀 상태다. 성과연봉제 도입으로 받은 인센티브를 반납해 비정규직 처우개선 등에 사용하자던 노조 측 제안도 흐지부지되는 분위기다. 개별 기관에 따라서는 이미 받은 성과급을 토해내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혼선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한다. 사안의 파급력도 크고 공공기관별 사정도 워낙 다른 만큼 급한 불을 끄는 데 매달리다가는 자칫 또 다른 무리수를 둘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안정화 한국기술교육대 고용노동연구원 교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은 각 기관 상황 등에 따라 매우 복잡한 문제다. 정부의 기본 로드맵이 한두 달 내에 나오더라도 그 뒤로 긴 진통을 겪어야 할 것”이라면서 “민간에도 영향이 큰 사안인 만큼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기준을 잘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성과연봉제 폐지 후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 “공공부문 임금수준·격차·체계 논의를 위한 노정교섭기구를 통해 논의해갈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정책 따로… 현장 따로… 공기업 비정규직 채용 여전
입력 2017-06-27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