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말이 유행이던 때가 있었다. 한 시대와 시절을 사로잡았던 이념조차도 경제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이를 보면 진짜 문제는 경제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과연 문제는 경제일까. 오히려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도덕’이 아닐까.
현 정부 주요 지도자들이 내건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은 사람의 어떤 요소가 먼저인가라는 의문을 자아내긴 하지만 도덕 지향적 철학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시대적 적절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집권 직후 대통령 이하 지도층이 보이기 시작한 탈권위주의적 수평적 문화에 많은 국민들이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은 도덕의 문제다.
국민들은 이런 지도자의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에서도 이제 살맛이 난다’고 댓글을 단다. 나도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도덕이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먼저다’라는 철학이 개인의 책임보다 권리에 치우친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살맛을 잃어버리는 사회가 될 수 있다. 인간 본성에는 책임과 권리 중 권리에 치우치게 하는 무서운 중력이 있다. 어떤 권리를 내려놓고 다른 더 큰 권리를 보상으로 받거나 바라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 권리를 내려놓고 더 많은 책임을 지려는 노력은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런 마음을 갖는 이는 매우 적다.
‘최소한의 도덕’이란 책임과 권리의 균형이다. 책임성 있는 도덕의 울타리와 견제 안에서만 권리나 인권도 보호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장성한 자녀들이 연로한 부모를 모시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고, 대주주가 종업원에 대한 복지의 책임을 외면한 채 대주주의 권리만 주장하고, 노동자들이 책임 있는 노동 없이 과도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주장하고, 인류의 보편적 성 윤리를 벗어난 성 인권을 주장하고, 생명을 보호할 책임보다 낙태할 권리를 주장하는 흐름으로 나아간다면 이 균형이 깨져 도덕의 심각한 균열 현상이 나타난다.
도덕 균열 현상은 경제 누수 현상으로 이어진다. 수많은 이익단체들의 마찰과 대립으로 인한 비용이 말할 수 없이 커지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최대한의 도덕’을 지향하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 각자가 권리보다 책임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권리를 짓밟혀도 침묵하라는 뜻이 아니다. 각자 좀 더 책임 있는 권리주체가 되자는 것이다.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에서 도덕이 우주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열쇠라고 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세상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뜻이다. 루이스는 도덕이 세 가지 행동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첫째, 도덕은 각 개인이 서로 공평하게 처신하며 조화를 이루는 일과 관련이 있다. 둘째, 각 개인의 내면에 있는 것들을 정돈 또는 조화시키는 일과 관련이 있다. 셋째, 인류의 삶 전체가 지향하는 보편적인 목적, 즉 ‘인간은 무엇을 위해 창조됐는가’ ‘모든 배의 선단이 가야할 경로는 무엇인가’ ‘악단 지휘자가 연주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123쪽)
그는 현대인들이 거의 언제나 첫째 사항만 생각할 뿐 나머지 둘은 잊고 산다고 지적했다. 나머지 둘이 없으면 각자의 내면을 정돈하지 않는 한 조종이 불가능할 정도의 배를 갖고 있는 선장에게 다른 배와의 충돌을 피하는 조정법을 가르치는 일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각 개인이 책임지려는 용기 그리고 희생하려는 이타심이 없이는 어떤 경제적 개선책을 찾아도 모두 뜬구름 잡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간파했다.(125쪽) 부정직하며 횡포 부리기 좋아하는 사람은 새로운 제도하에서도 예전에 하던 짓을 계속할 새로운 방법을 반드시 찾아내고야 만다는 것이다.
도덕적 책임감이 되살아날 때 경제가 다시 살아나고 성장과 복지도 동시에 해결될 수 있다.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도덕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도덕의 셋째 요소가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다. 하나님은 도덕적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교회는 이 사회에 옳고 그름을 보여줄 수 있는 도덕적 공동체여야 한다. 권리보다 책임을 더 지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공동체여야 한다.
이재훈(온누리교회 목사)
[시온의 소리] 문제는 도덕이다
입력 2017-06-2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