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가뭄이 남긴 상흔은 깊고도 처절했다. 대지는 바짝 말라 있었고 도로에는 흙먼지가 가득했다. 어디에서도 초록을 만나기 힘들었다.
지난 19일 아프리카 케냐 와지르주(州)의 주도인 와지르타운에서 사륜구동 차량을 타고 2년째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현장으로 향했다. 뿌연 흙먼지 때문에 불과 10여m 앞에서 달리던 경호차량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겨우 살아있는 잡목들도 푸른 잎을 잃은 지 오래였다. 개천이나 웅덩이는 대부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수도 나이로비에서 북동쪽으로 약 350㎞ 떨어진 와지르주가 2년째 극심한 가뭄으로 타들어 가고 있다. 가뭄은 대기근으로 이어졌고 모든 것을 앗아갔다. 사막성 기후여서 가뭄에 익숙한 이곳 주민들도 두려움에 떨고 있다. 2011년 아프리카 동부에 1000만명의 이재민을 낳았던 최악의 가뭄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와지르타운에서 남서쪽으로 2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라그보홀 마을은 가뭄이 남긴 상처로 가득했다. 목동 압디나실 알리아덴(32)씨는 100여 마리의 염소를 끌고 오염돼 녹색으로 변해버린 연못에서 물을 먹였다. 그는 “이 연못이 마을 사람들에겐 축복의 생명수”라고 했다. 그는 “이틀에 한차례 마을에 남은 염소들을 끌고 물을 먹이러 온다. 이 연못이 반경 30㎞ 내에서 유일하게 남은 연못”이라며 “밤이 되면 주민들도 물을 길으러 온다”고 했다. “이 연못이 마르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한동안 마른 땅만 내려다 보다 “다른 사람들처럼 풀과 물을 찾아 떠나야죠”라고 답했다.
자리를 옮겨 케냐 정부와 일본국제협력기구가 공동으로 개발한 ‘구디차 마을 연못’을 찾았다. 축구장 2개 정도 크기의 연못은 바싹 말라 있었다. 물이 있던 자리를 내려다보던 아미나 바루(12)양의 마른 눈동자에선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학교를 다녔으면 올해 4학년이지만 물을 구하느라 학교에 가지 못했다”면서 “수학을 좋아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와지르주의 극한 가뭄은 해를 거듭하고 있지만 해소될 기미가 없다. 지난 3월 우기에 비가 내리긴 했지만 평균 강수량의 30% 수준인 89㎜가 전부였다. 거북 등껍질처럼 갈라진 저수지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가뭄은 와지르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아이들은 물을 구하기 위해 매일 끝도 보이지 않는 사막을 오간다. 목축을 하는 와지르 남자들은 하나 둘 풀을 찾아 기약 없이 길을 떠났다. 남자들이 떠난 마을은 범죄의 위험에 노출된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20일 찾은 우톨레 마을에서도 젊은 남자를 볼 수 없었다. 맨바닥에 얼기설기 나뭇가지를 쌓아 엮은 전통 주택인 아갈호리에서 만난 마디나 이브라임(40·여)씨는 “우리 마을은 아직 공동우물이 마르지 않아 마실 물이 조금은 남아 있다”면서 “하지만 언제까지 물을 마실 수 있을지는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20ℓ짜리 물통에 막 물을 길어온 이브라임씨는 아들 하산(6)에게 물을 건넸다. 노란색 컵에 담긴 물을 받아든 하산의 눈에 촉촉하게 눈물이 맺혔다.
이웃에 살고 있는 아덴 히르시(60)씨는 대뜸 집 옆 공터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수백 마리는 돼 보이는 양의 사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는 “가뭄과 기근으로 하나둘 굶어 죽었다”면서 “염소와 양이 500마리 있었지만 이제 고작 40마리 남았는데 얼마 살지 못할 것 같다”며 탄식했다. 히르시씨는 죽은 양의 배에서 비닐뭉치를 꺼내 보이며 “먹을 게 없어 양들이 비닐을 먹었다. 물이 없으니 풀도 없고, 이런 비참한 죽음만 남는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와지르 방문에 동행했던 양호승 한국 월드비전 회장은 우톨레 초등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아무리 힘들어도 학교는 꼭 다녀야 한다”면서 “와지르의 미래가 여러분들에게 달려 있다”고 호소했다. 한국교회에도 당부했다. 양 회장은 “케냐 월드비전이 한국 월드비전의 지원을 받아 와지르에 지역개발사업 사무소를 내고 긴급구호를 펼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면서 “와지르의 가뭄을 좌시하면 더 큰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요청했다.
와지르(케냐)=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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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2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