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거인의 퇴장… 신격호 시대 70년만에 막내리다

입력 2017-06-26 00:02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95·사진) 총괄회장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24일 일본에서 열린 롯데홀딩스 정기주총에서 의결권 과반수 찬성으로 신동빈 회장과 사외이사 2명을 포함한 8명이 재선임됐다”며 “신 총괄회장은 이사 임기 만료에 따라 이사직을 퇴임하고 명예회장에 취임하게 됐다”고 25일 밝혔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13개의 일본 롯데 계열사의 지주회사일 뿐 아니라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 지분 19%를 보유한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이다.

신 총괄회장이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물러남으로써 70년의 ‘유통 거인 신격호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해부터 롯데제과, 호텔롯데, 롯데쇼핑 등 주요 계열사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현재 롯데알미늄 이사직만 유지하고 있으나 이 역시 임기 만료되는 오는 8월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재일교포 사업가인 신 총괄회장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 ‘샤롯데’처럼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겠다며 1948년 일본 도쿄에서 껌 제조사 ㈜롯데를 세웠다. 초콜릿(1963년) 캔디(1969년) 아이스크림(1972년) 비스킷(1976년) 등을 잇달아 선보이면서 일본에서 종합 제과기업으로 입지를 굳혔다. 80년대 중반 일본에서 롯데상사, 롯데부동산, 롯데전자공업, 프로야구단 롯데오리온즈(현 롯데마린스), 롯데리아 등을 거느린 재벌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본에서 성공한 신 총괄회장은 59년 고국인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롯데와 롯데화학공업사를 세워 껌·캔디·비스킷·빵 등을 생산했다. 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고, 74년 칠성한미음료(현 롯데칠성음료), 77년 삼강산업(현 롯데삼강)을 각각 인수하면서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우뚝 섰다. 73년에는 소공동 롯데호텔, 79년에는 소공동 롯데백화점을 각각 오픈하면서 관광업과 유통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78년 평화건업사(현 롯데건설), 79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인수를 통해 건설과 석유화학 분야로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신 총괄회장은 80년대 롯데그룹으로 고속성장을 이끌었고, 잇단 인수·합병(M&A)을 통해 오늘날 국내 재계 서열 5위 기업으로 키웠다.

자수성가로 일본과 한국에서 ‘롯데 신화’를 일군 신 총괄회장의 시대는 아들 형제 경영권 분쟁으로 2015년 7월 균열이 가기 시작됐다.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이사회에서 대표이사 부회장에 선임돼 한·일 롯데를 총괄하는 ‘원톱’ 자리에 오르자 형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신 총괄회장을 등에 업고 롯데홀딩스에서 신 회장 해임을 시도하는 등 경영권 분쟁이 불거졌다.

신동주·동빈 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이어지면서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 문제가 불거졌다. 이달 초 대법원에서 신 총괄회장에 대해 한정후견인을 지정하면서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평생 숙원사업으로 30년 만에 완공된 롯데월드타워를 지난 5월 방문한 것이 신 총괄회장의 마지막 공식 행보가 된 셈이다.

신 회장은 이날 주총 표 대결에서 2015년 8월, 2016년 3월과 6월에 이어 또다시 신 전 부회장 측에 승리를 거뒀다. 롯데그룹 지배권을 더욱 공고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신 전 부회장이 ‘무한주총’을 통한 경영권 탈환 의지를 표방, 경영권 복귀 시도를 계속할 것으로 보여 경영권 분쟁은 여전히 불씨로 남아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