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태권도연맹(ITF)을 주도하는 북한 선수 및 관계자들이 23일 남한 땅을 밟았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첫 남북 교류다. 최근 북한에 억류됐다가 미국으로 송환된 지 엿새 만에 사망한 오토 웜비어씨 사건과 사드 갈등 등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 국면이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스포츠교류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남한 어린이들 따뜻한 환영
ITF 시범단은 세계태권도연맹(WTF)이 24∼30일 주관하는 ‘2017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4차례 시범공연을 하기 위해 김포공항을 통해 방문했다. 북한이 주도하는 ITF가 남한을 찾은 것은 2007년 이후 10년 만이다. 방남한 ITF 시범단 36명 중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겸 ITF 명예총재를 비롯해 ITF 이용선 총재, 황호영 수석부총재, 박영칠 단장과 송남호 감독·선수 등 32명이 북한인이다.
김포공항에는 총 20명으로 구성된 WTF 어린이 시범단이 나와 ITF 시범단에 꽃목걸이를 하나씩 걸어줬다. 이수민(14)양은 “북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게 기쁘면서도 매우 떨린다”며 “같은 태권도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무언가 통할 것만 같고 기대되는 게 많다”고 말했다.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 논의 주목
단순한 태권도 대회이지만 남북 체육인들이 모인 만큼 8개월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과 분산 개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20일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고 평창올림픽 분산 개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한 마식령 스키장 활용 방안과 성화 북한 구간 봉송 의지도 밝혔다.
IOC도 긍정적인 반응이다. 이날 영국 BBC에 따르면 마크 애덤스 IOC 대변인은 “도 장관의 생각에 대해 기쁘게 논의하겠다”며 “올림픽은 언제나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도 장관은 24일 열리는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참석해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북한의 장웅 위원을 만난다. 도 장관은 이 자리에서 평화올림픽 추진을 위한 협조를 당부할 계획이다. 장 위원은 “(평창올림픽과 분산 개최 관련)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거나 논의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남북한 NOC(국가올림픽위원회)가 함께 논의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남북관계 반전 계기 될까
ITF 시범단의 방남만으로 당장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중론이다. 북한은 이번 행사를 제외하고 경색된 국면을 해소하기 위한 문재인정부의 각종 제안을 모두 거부했다. 다만 남북관계에 있어 이번 행사가 반전의 계기를 맞을 것이라는 기대는 나온다. ITF 시범단의 방남은 문재인정부가 지난달 출범 이후 의지를 보여 온 남북 민간교류 활성화의 첫 단추다. 또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웜비어 사망 등으로 한반도 주변국 간 관계 경색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대화를 나눌 장이 될 수 있어 의미가 작지 않다.
남북 당국자 사이에서 간단한 비공식 접촉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대북정책을 담당하는 통일부 천해성 차관이 24일 개막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 인사 중 남북관계와 관련해 의사타진을 할 만한 인물이 올 수 있다. 당국자 간 상호 관심사 등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 입장을 확인하는 간접적 효과 등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통일부는 항공료와 숙박비 등 체류비 명목으로 ITF 시범단에 남북협력기금 7000만원을 지원했다. 북한 주민에 왕래비 지원이 이뤄진 것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장애인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에 4억6000만원이 지급된 이후 처음이다.
글=모규엽 조성은 박구인 기자hirte@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남한 땅 밟은 北 태권도 시범단 ‘화합의 발차기’
입력 2017-06-23 2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