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정위원장과 재벌의 만남이 의미 있으려면

입력 2017-06-23 18:07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재벌그룹 경영진을 만난 것은 의미가 있다. ‘경제검찰’ 수장과 4대 그룹 수뇌부 간 만남은 노무현정부 이후 13년 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4대 재벌 개혁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웠고 ‘재벌 저격수’라 불려온 김 위원장에게 칼자루를 쥐어줬다. 김 위원장이 갖는 상징성만으로 기업들은 위축될 수도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그런 점에서 김 위원장이 재계와의 만남을 요청한 것은 긍정적이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사전규제 법률을 만들어 기업의 경영판단에 부담을 주거나 행정력을 동원해 기업을 제재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인들 스스로 선제적인 변화의 노력을 기울이고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옳은 방향이다. 그는 기업들과 충실히 대화하겠다고 했다. 기업과 소통하면서 정책의 불확실성을 덜어주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적은 지분으로 재벌 총수가 그룹을 좌지우지하는 순환출자 구조나 일감 몰아주기와 편법 승계 등은 시급히 청산해야 할 전근대적 유물이다. 부당거래나 하도급 업체에 대한 갑질 관행 등 공정사회를 만들기 위해 손봐야 할 과제가 수두룩하다. 김 위원장은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의 갑질 혐의에 대해 조사에 나선 데 이어 부영그룹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개혁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재벌 개혁이 기업의 경영활동을 옥죄거나 몰아치기 식으로 흘러선 곤란하다. 기업들에 일관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각 기업이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속도의 완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재계는 새로운 상생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최우선 국정과제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일자리 창출도 기업들의 협조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재계는 글로벌 기업답게 환골탈태하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