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관대표회의 이후 판사들의 내부 전산망인 ‘코트넷’에 양승태 대법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글들이 올라온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실이 공식 인정되고 전국 법원의 판사들이 모여 추가 조사를 요구한 직후의 일이다. 이 같은 판사들의 행동에 여섯 번째 사법파동을 예상하는 시각도 있다.
코트넷에 신설된 ‘전국법관대표회의’라는 익명게시판에는 이날 양 대법원장의 퇴진을 요구한 판사들의 글이 여러 건 게시됐다. 한 판사는 “이번 일은 1988년 김용철 대법원장이 중도 퇴진한 경우보다 상당히 심각한 사안”이라며 “대법원장께서 책임을 통감하고 사법부를 위해 용단을 내리는 것이 적절하다”고 썼다. 양 대법원장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며 비판하는 논조의 글도 있었다. 양 대법원장 퇴진 요구에 반박하는 성격의 글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측의 별도 게시판 개설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이 게시판은 전국 현직 판사들만 접속할 수 있다. 대법원장에 대한 판사들의 사퇴 요구는 1988년 ‘제2차 사법파동’ 이후 거의 30년 만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번 대법원장 퇴진 요구가 과거의 사법파동들과 달리 파장이나 성격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는 관측도 크다. 양 대법원장의 퇴진을 요구한 글들은 익명으로 작성됐는데, 법원 내부 기류를 얼마나 일반화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듣기 어렵다. 전국법관대표회의의 대표성과 의결 과정 등을 둘러싼 논란도 판사들 틈에서 계속되는 실정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판사들의 시각이 현재 많이 다르다”며 “과거에 이른바 연판장을 돌리던 것만큼의 분위기는 아니다”고 전했다.
‘사법부 블랙리스트’에 대한 문제의식이 컸지만, 시간이 흐르며 법원 내부의 내홍이 깊어지는 모습도 어쩔 수 없이 엿보인다. 이 익명게시판에는 전국법관대표회의의 대표성과 안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중이다. 회의 과정의 투명한 공개를 원한다며 속기록·녹음파일 등의 게시를 요구하는 글도 게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100명 중 2명은 사퇴한 상황이다.
이번 사태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진보적 성격의 법원 내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활동을 제한하려 했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특정 정책과 배치되는 선고를 내린 판사에게 인사상 불이익이 있었는지 등을 조사했는데, 당시 법원행정처가 소속 판사를 행정처로 발령내는 등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진상조사 결과 사법행정권 남용 사실은 있었던 것으로 판명됐다.
이후 전국 법원에서는 더욱 명확한 책임자 문책 등이 있어야 한다는 논의가 계속됐다. 전국 100명의 판사로 이뤄진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난 19일 사법연수원에서 회의를 열고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한 추가조사, 전국법관회의 상설화를 위한 대법원 규칙 제정,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는 뜻을 모았다.
이경원 양민철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투데이 포커스] ‘코트넷’에 대법원장 퇴진 요구 글… ‘6차 사법파동’ 조짐?
입력 2017-06-23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