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채용 속도전… 가이드북 만들어 민간으로 확산

입력 2017-06-23 05:04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공무원 및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제'와 함께 지방 이전 공공기관 신규 인력의 30% 이상을 지역인재에 할당하는 지역인재 채용 할당제를 도입토록 지시했다. 이병주 기자

정부가 이달 중 관계부처 합동으로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실천방안을 발표한다. 지독한 청년 취업난 속에서 학연, 지연, 혈연 등 인맥에 따라 차별받는 문화를 혁파하고 실력 중심의 채용 시장을 만들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민간 기업의 동참 여부가 블라인드 채용 확대의 관건으로 꼽힌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22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통한 불합리한 채용 적폐 청산이라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 논의가 있었다”며 “공공부문 우선 도입 및 민간부문 확산 계획이 논의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 회의를 통해 공공기관과 지방 공기업의 입사지원서에서 출신지역, 가족 관계, 신체 조건과 학력 등 인적사항을 삭제하기로 했다. 서류 전형은 물론 면접 전형에서도 인적사항 등을 묻지 않는 대신 실력 중심 평가 제도를 도입한다.

공공기관은 이미 시행준비가 완료돼 금년 중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할 예정이다. 민간 부문 확대를 위해서는 현장과 전문가 의견을 반영한 블라인드 채용 가이드북이 만들어진다. 청와대는 또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도 이런 내용을 반영토록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박 대변인은 “이달 중 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 인사혁신처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실천방안을 확정·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인드 채용은 ‘헬조선’으로 대표되는 청년들의 구직난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취업준비생들은 토익점수, 학점, 해외연수 경험 등을 흔히 제품 사양을 뜻하는 영어 ‘스펙(specification)’으로 빗대 사용한다. 스스로 몇 점짜리 제품이라고 비하하는 식이다. 과잉 스펙 경쟁이 벌어지면서 자살 등 여러 부작용도 양산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이 확대될 경우 이런 부담은 다소 줄어들 전망이다.

대기업의 경우 불필요한 스펙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2∼3년 전부터 ‘이력서 다이어트’를 실시하는 추세다. 롯데그룹은 2015년 상반기 공채부터 사진, 외국어 성적, 수상 경력, 봉사활동 등의 항목을 없앴다. 또 스펙을 보지 않는 ‘스펙 태클 오디션’도 공채와 별도로 진행 중이다. 스펙 태클 오디션은 ‘부문별한 스펙 쌓기에 태클을 건다’는 의미로, 구직자는 이름, 연락처, 이메일 주소 같은 최소한의 정보만 제출한다.

SK그룹도 2015년 초부터 외국어 성적, 수상 경력, 사진 등의 항목을 없애고 학교, 학과, 학점 등 최소한의 항목만 기입하는 ‘무스펙 채용’을 시행하고 있다. LG그룹은 2014년부터 주민등록번호, 사진, 가족관계, 현주소 등의 입력란을 없앴다.

하지만 기업들은 학력 같은 기본적인 정보를 아예 기입하지 않는 것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회사나 직무 성격에 따라 학과나 학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시험점수 비중이 높은 공무원과 민간 기업을 동등하게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글=강준구 김현길 기자 eyes@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