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 울린 한은… “가계빚 고위험가구 31만 넘어”
입력 2017-06-23 05:01
한국은행이 본격적인 금리 상승기를 앞두고 31만 가구를 넘어선 가계부채 고위험 가구와 1644조원 규모의 부동산금융에 경고장을 보냈다. 최근 인위적 부동산 경기부양에 기대 성장해 온 한국경제가 금리 상승기를 맞아 리스크 관리로 전환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한은은 22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의결해 국회에 제출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지난해 12월부터 석 달마다 기준금리 인상을 집행해 오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대출금리 인상으로 피해볼 가구를 정밀 분석했다. ‘고위험 가구’란 개념이 새로 등장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40%를 넘고 동시에 총부채 대비 자산평가액(DTA)이 100%를 초과하는 가구다. 풀이하면 한 달 100만원 버는데 40만원 넘게 빚 갚는 데 쓰면서 동시에 현재 가진 재산을 전부 현금화해도 빚을 다 갚을 수 없는 가구를 말한다. 고위험 가구는 2016년 기준 31만5000가구로 이들 부채는 62조원 규모로 파악됐다.
한은은 대출금리가 각각 0.5% 포인트, 1% 포인트, 1.5% 포인트 올라가면 고위험 가구가 지난해보다 각각 8000가구, 2만5000가구, 6만 가구 증가한다고 계산했다. 이들의 금융부채도 2016년보다 각각 4조7000억원, 9조2000억원, 14조6000억원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은은 “대출금리가 단기간 큰 폭으로 상승할 경우 고위험 가구 수와 부채가 크게 늘어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가계부채의 가장 취약한 고리가 바로 이들 가구라는 지적이다.
한은은 또 부동산금융 규모가 지난해 말 1643조7000억원으로 집계돼 사상 처음으로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추월했다고 밝혔다. 부동산금융 익스포저는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904조원과 부동산 관련 기업의 여신 578조원, 관련 금융투자상품 162조원을 합친 액수다. 이게 우리나라 경제 전체 생산액보다 더 커져버렸다는 의미다.
한은이 부동산금융 익스포저를 집계해 보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이 부동산에 과도하게 치우쳤음을 지적하고 동시에 부동산 경기 급락 시 금융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한은은 “2014년부터 공적기관의 보증 관련 익스포저가 빠르게 늘고 있어 금융안정 측면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가계부채 급증 원인으로 저금리 지속 기조와 부동산 규제 완화, 베이비붐(1955∼63년 출생) 세대의 자영업 진출 및 임대주택 투자 확대를 지적했다. 단기적 부채 억제책으로는 정부 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방안과 함께 위험도 높은 대출에 대한 금융권의 리스크 관리 노력을 꼽았다. 중장기 대책으로는 소유보다 거주 중심 주택소비 문화와 주택연금제도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어진 간담회에서 정부의 6·19 부동산 대책에 대해 “주택시장 안정을 도모하고 관련 대출 증가세를 완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는 24일 임기가 끝나는 장병화 부총재 후임 인선에 대해서도 이 총재는 청와대와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언급했다. 한은 부총재 역시 금리결정권을 가진 7인의 금통위원 가운데 한 명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현재 공석인 청와대 경제수석 및 금융위원장 인선에 밀리는 모양새여서 당분간 금통위 6인 체제가 불가피해졌다.
글=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