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니바퀴처럼 함께 교회 이루는 목회자와 평신도는 ‘한 새 백성’

입력 2017-06-22 00:06
교회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의 새로운 백성이며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존재한다. 구성원 사이엔 역할 차이만 존재할 뿐 지위고하는 없다.
평신도들이 깨어나고 있다. ‘제왕적 목사’로 대변되는 교권주의를 거부하고 당회를 비롯한 제직회, 공동의회에 적극 참여하며 재정 투명성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성경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이다.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 ‘만인제사장’으로서 성도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몸부림으로 보인다.

그동안 교권주의는 평등해야 할 교회 안에 위계질서를 만들어내 목사는 거룩한 일을, 평신도는 속된 일을 한다는 극단적 이분법을 유발했다. 하지만 이 같은 차별을 조장하는 성경 구절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정반대다. 성경은 ‘성직자-평신도’ 관계가 아니라 ‘한 새 백성’으로 규정한다. 이 백성은 진정한 교회(에클레시아)를 이루며 세상을 위한 섬김(디아코니아)과 증언(마르투리아)을 위해 존재하며 함께 교제(코이노니아)를 나눈다.

저자이자 우리 시대 최고 복음주의자였던 존 스토트 목사는 성경이 말하는 교회, 성경이 전하는 목회자와 평신도의 바른 관계에 대해 자세하게 풀어낸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주님을 예배하며 증거하도록 부름 받은 공동체다. 이 의무는 특정인이 아니라 교회 구성원 전체에 주어졌다. 이는 성직자가 독점할 수 없고 평신도들도 피할 수 없는 의무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성직자-평신도’ 구분은 비성경적이라고 본다. 특히 자신을 구약의 제사장에 빗대 평신도와 구분하고 특권적 위치를 점하려는 목회자들에게 일격을 가한다.

저자는 “제사장이라는 단어가 기독교 성직자에게 사용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라며 “기독교 성직자는 장로이지 제사장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한다(72쪽).

스토트 목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제사장 집단과 백성의 구별이 신약성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제사장을 뜻하는 헬라어 ‘히에레우스’는 신약에서 오직 세 부류의 사람에게만 사용된다고 밝힌다. 첫째는 구약의 제사장,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큰 제사장’, 셋째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지칭한다.

목사를 제사장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3세기 중엽부터다. 당시 카르타고의 감독이었던 키프리안은 교회의 목사를 구약시대 제사장과 동일시하고 성찬을 기독교식 제물로 간주했다. 이때 구약의 제사장과 일반 백성(평신도)의 구별이 교회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구별은 신약성경의 만인제사장직, 곧 교회 구성원 모두가 제사장이라는 사상으로 대치된다.

저자는 ‘성직자-평신도’의 바람직한 관계를 섬김의 키워드로 제시하며 성경이 말하는 각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평신도는 세상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이며 성직자는 그런 평신도들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평신도는 세상에 몸담고 있는 흩어진 교회로 성직자보다 더 깊숙이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성직자는 코치처럼 이들 평신도를 교육하고 훈련하며 온전케 하는 사람들이다. 지체의식과 상호 섬김은 성도들이 추구할 교제의 핵심이다.

저자는 거듭해서 “목사가 중요하고 평신도는 열등한 부류에 속한다는 생각은 매우 잘못됐다”며 “오히려 그 반대다. 평신도가 중요하다. 온 교회가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는 자들이고 성직자는 그것을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못을 박는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