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경제인사이드] 다시 뜬 ‘떴다방’… 불법인데 건설사·분양대행사 분양률 높이려 모른 척
입력 2017-06-22 05:01
11·3 부동산대책 시행 두 달 만인 지난 1월 7일 오후 1시쯤.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에 위치한 A아파트 견본주택 근처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 파라솔 앞에 최보경(56)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지도단속실장이 등장했다. 서울에서 시흥으로 이사 오는 50대 남성으로 위장한 최 실장에게 한 여성이 다가왔다. 속칭 떴다방 소속 판매원이었다.
“어떤 물건 찾고 계세요?” “35평 정도 되는 남향 집 찾고 있어요.” “아, 물건 있고요. 근데 웃돈이 좀 붙어 있어요. 500만∼1200만원 정도. 당첨된 뒤 웃돈 받고 팔려는 분들이 있으세요.” “너무 비싼데.” “그럼 웃돈은 700만원까지 해드릴게요. 일단 저 따라서 모델 한번 보고 오시죠.”
최 실장과 여성은 견본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 구조를 둘러본 최 실장이 계약하고 싶다고 하자 여성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아들 명의로 청약에 당첨된 뒤 떴다방에 판매를 맡긴 이에게 여성은 줄곧 ‘사모님’이라고 했다. 통화를 마친 여성은 최 실장에게 “1차 계약에서 1000만원을 입금하면 인감증명과 분양계약서 등 일명 밑서류를 챙겨 드리겠다”고 했다. 최 실장이 실제 고객이었다면 떴다방 측은 2시간여 만에 300만원의 수수료를 챙길 수 있었던 셈이다.
5개월이 지난 지금도 떴다방은 건재하다. 6·19 부동산대책 직전 정부가 대대적인 단속을 시작하면서 잠시 자취를 감췄지만 30여년간 이어져온 저력을 바탕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아 분양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쉬쉬하는, 돈이 모이는 곳에 독처럼 피어나는 부동산 떴다방은 언제부터 생겼고 어떻게 변화해 왔으며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떴다방의 탄생
떴다방의 유래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아파트 견본주택 앞에 설치한 천막의 모습에서 기원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분양현장마다 옮겨 다니며 ‘여기 떴다, 저기 떴다’ 하는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1970년대 ‘영동(강남) 개발’로 불리는 압구정·반포지구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등장한 ‘아줌마 투자부대’(복부인)를 시초로 보고 있다. 1988년 강남의 마지막 대단지 아파트로 관심을 모았던 삼풍아파트 가짜 입주권(속칭 ‘물딱지’)에는 800만원의 웃돈이 붙었는데 이를 취급한 것도 복부인들이었다.
지금 같은 형태의 떴다방이 등장한 건 1998년 국민의정부 때였다.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분양권 전매제한을 풀고 한시적으로 양도세를 면제하는 등 각종 부양책을 내놓으면서 떴다방들이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경기도 구리시 토평지구에 파라솔로 대표되는 떴다방이 잇따라 등장했다.
특히 2006년 ‘판교 로또’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가파른 집값 상승세를 주도한 판교신도시 분양이 시작되면서 떴다방은 점차 세를 확장해 나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잠시 사라졌던 떴다방은 2013년 위례신도시 분양과 함께 수도권을 중심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지난 4월 12일 청약 당첨자를 발표한 경기도 평택 고덕국제신도시 ‘제일풍경채 센트럴’ 아파트의 경우 견본주택 앞에 떴다방 야시장이 열려 진풍경을 이루기도 했다.
진화하는 수법
떴다방의 수법은 이렇다. 견본 주택 앞에 파라솔을 치고 간이의자와 테이블을 편 뒤 청약자나 관람객을 유혹한다. 당첨권 사고팔기, 청약통장 매집을 통한 당첨확률 높이기, 아르바이트를 통한 3순위 대리 청약 등도 이어진다.
특히 분양권 전매제한이 끝나지 않은 아파트의 경우 법망을 피하기 위해 계약서를 따로 작성하지 않고 수분양자 계약서와 신분증, 통장을 제시한 뒤 계약금·중도금·웃돈이 입금되면 분양권을 공증하거나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통해 계약을 완성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죽통작업’이라는 신규 수법도 등장했다. 일단 떴다방 업자들이 분양신청서에 마치 가점이 높은 것처럼 허위로 기재해 당첨을 받는다. 이후 가점의 진위를 확인하는 계약 단계에서 분양을 포기함으로써 미계약 물량을 만든다. 사전에 매수한 분양대행업체 관계자를 통해 추가 추점 절차를 생략한 뒤 수의계약을 해 프리미엄을 나눠 갖는 식이다. 단순히 청약통장 매수에 그치지 않고 계약 과정을 조작하는 수준까지 진화한 셈이다.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유행하는 ‘점프 통장’도 떴다방의 새로운 전략 중 하나다. 업자들이 당첨을 목적으로 다른 지역의 거주자가 소유한 청약통장을 대거 사들여 특정 지역에 위장 전입하는 수법이다. 가점이 높은 청약통장을 한꺼번에 청약해 받은 분양권을 웃돈을 받고 팔아 차익을 챙기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정식 공인중개사가 아닌 중개 보조원들이 주로 떴다방 판매원을 맡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중개인(브로커)뿐 아니라 연락처 확보, 줄서기(미계약분 잡으려는 사람을 중심으로 미리 내집마련 신청서를 받는 것) 등 역할을 분담한다. 분양권을 사고팔 사람을 모집해 거래를 성사시키면 업자는 건당 100만∼200만원까지 수수료로 받는다. 웃돈이라는 허상을 매개로 실제 돈이 오고가는 게 떴다방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하기에 분양권 매도·매수가 확실한 인기 단지 위주로 떴다방이 기생하는 것이다.
왜 안 없어지나
떴다방은 투기 세력이 아닌 주택 실수요자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다. 떴다방으로 인해 웃돈이 과도하게 형성되면 입주 시기에 맞춘 집값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 유혹에 넘어간 실수요자의 경우 불법전매로 인해 계약 무효 등 법적인 피해를 책임져야 할 상황이 오기도 한다.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는 떴다방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건설사와 분양대행사의 묵인이다. 지난 5월 21일 한 건설사는 자사의 분양 단지와 관련해 ‘떴다방도 견본주택 인근에서 아파트 당첨 시 연락을 달라며 명함을 돌리느라 분주했다’고 홍보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와 건설사, 분양대행사 모두 단지의 성공을 위해 떴다방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공생관계에 있다”며 “떴다방이 몰리는 곳이 인기 단지라는 인식에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안일한 태도가 두 번째 이유다. 떴다방은 공인중개사법 위반으로 처벌 가능하다. 분양권 불법전매 행위가 적발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 공인중개사무소 등록 취소 또는 업무정지 조치가 내려진다. 임시중개 시설물 설치의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의 적발 실적은 초라한 수준이다. 떴다방 적발 관련 등록취소 건수는 2012년 1건에 그쳤고 지난해는 아예 전무했다. 경찰 고발 건수도 2012년 이후 매년 4∼7건에 그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모두 단속 인력부족과 함께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버리는 떴다방의 기민함 탓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사전에 예고하는 반짝 단속이 아니라 상시점검이 시스템화되어야 한다”며 “행정지도 강화, 처벌 규정 강화 등으로 불법 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게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글=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